혹시 그대는 김응교 시인을 아시오? 나는 신학대학교 학부에 다닐 때부터 그분의 시와 글을 읽었소. 뭘 알고 읽은 거는 아니고,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어서 그렇게 폼을 잡고 있었소. 아마 그분이 크게 뇌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오. 투병일기 비슷한 것을 읽은 것 같소. 다 옛날이야기요. 그런 젊은 시절이 좋은 것은 책읽기에 빠져들어 간다는 것이오. 김응교 시인이 금년 초부터 <기독교 사상>에 글을 연재하고 있소. 그분의 독특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시에 대한 해설을 하오. 이번 달에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개하는 글을 썼소. 그 글의 제목을 오늘 매일묵상의 제목으로 그대로 따왔소. 김응교의 설명에 따르면 네루다의 대표 시의 제목은 <시>라 하오. 김응교 시인은 시창작이라는 강의의 첫 시간에 주로 이 시를 읽는다 하오. 다음과 같소.

 

그러니까

그 나이였지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 왔는지 강에서 왔는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다. 그건 들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며 침묵도 아니었어.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것이 나를 건드렸어.

(it touched me)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었어.

뜨겁거나 잊혀진 날개들,

또한 내 맘대로 해보았지

그 불을

해독하며,

드디어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지.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난센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구부러진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디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어떻소? 뭔가가 그대를 건드리지 않소? 저 시를 외우고 싶소. 그런데 내 나이에 시를 외울 수 있겠소? 그게 안 된다면 이번 가을에 도서관에서 네루다의 시집을 빌려서 읽어보겠소. 김응교 시인의 해설 마지막 패러그래프를 그대로 옮기겠소.

 

     우리에게 시혼(詩魂)은 이렇게 다가온다. 이 <시>를 쓴 네루다처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리의 눈시울과 뼈와 피를 조금씩 건드리며 말을 거는 시혼을 잘 환대해야 할 것이다. 그 시혼과 자주 친해지다보면, 영혼이 움직이고, 어쩔 수 없이 참을 수 없어 희미하게 혹은 어렴풋이 한 줄 쓰게 된다. 그런 순간, 갑자기 새 하늘이 열리고, 그냥 시라는 바람에 풀려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시는지. 시혼이 우리의 영혼을 건드리는 은밀한 순간을, 톡톡.

 

(2010년 9월27일, 월, 지난여름의 열기가 다시 그리워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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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로

2010.09.27 23:54:50

빠블로 네루다의 시..열정이 담긴 시이죠. 특히 노동자들의 자본가에 대한 투쟁 곧 계급투쟁이 가진 위력에 대해 쓴 시에 대해 감동을 받았더랬습니다. 선전선동이 아닌, 문학으로 계급투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동받았는지..개인적으로는 사회주의  시인으로 존경하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체호프

2010.09.28 08:30:00

아. 저도 네루다 좋아합니다. "시"라는 시는 <일포스티노>라는 영화의 엔딩 장면을 장식하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네루다의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네요.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출신이 노동계급인 네루다는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열혈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에 맞서다 대통령궁에서 폭사한 아옌데의 혁명적 영웅주의는 요즘 유행하는 체 게바라에 비견할 만합니다다 (아옌데와 70년대 칠레 역사에 대해서는 <칠레전투>라는 다큐멘터리를 참조해볼 수 있습니다). 네루다는 스페인의 국민시인 가르시아 로르까와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로르까는 스페인 내전 때 의문의 죽음을 당했죠. 역사가들은 프랑코 정권이 암살했을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로르까의 죽음은 <그라나다에서의 죽음>이라는 영화가 극화하고 있군요. 시대와 뜨겁게 포옹한 사람들. 모두들 가고 시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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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0.09.28 10:31:14

시인에게 '시혼'이 다가가듯,

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어

성령님께서 나의 눈시울과 뼈와 피를 건드리며 말을 걸어 주시기를.

 

보잘 것 없는 내 영혼을 움직여 주시고,

참을 수 없는 내 영혼을 채워 주시기를.

 

어느 순간, 갑자기 새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에게 흡수돼 버리기를,

성령님이 내 영혼을 톡톡 건드시기를.

 

내 소망을 무너뜨리고, 가루를 내시기를.

 

그릇을 집어던진 토기장이가 새 질그릇을 만들어 굽듯,

그의 물에 가루를 개어 다시 만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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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2010.09.28 11:41:33

도도아빠님의 기도에 공감합니다.

저도 네루다의 시를 몇 개 읽은 적이 있는데

먼지 날리는 흙내음이 나면서,

구분되는 영롱한 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어느 분이 한 권 추천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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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아빠

2010.09.28 11:51:47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정현종 옮김, 민음사)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030115&barcode=9788937407413&orderClick=)

 

저는 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냥 네루다에 대해 듣고 찾아봤는데, 이 시집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많이는 읽지 못했고요.

 

저는 시편도 그렇고, 이 시집도 조그맣게 읽어보는데, 나름대로 좋습니다.

 

 

첫날처럼

2010.09.28 15:59:05

시혼이라는 것도 나풀 거리는 神性의 옷자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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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2010.09.28 19:26:02

네루다의 "100 Love Sonnets" 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번째 부인이 된 Matilde Urrutia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죠.

<일포스티노>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네루다의 모습이 이 때 쯤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도 위에 소개하신 "스무편의.." 책 제목을 보고 사긴 했는데

아직 못 읽은 시가 더 많지만 아침, 점심, 저녁, 밤이라는 소제목으로

스물 다섯 개의 소네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sonnet는 시 양식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나를 톡톡 건드렸어"  번역이 참 좋습니다.

그대의 그 건드림을 깨닫는 "나"이면 좋겠습니다.

톡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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