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8)

Views 2370 Votes 0 2013.07.03 23:31:16

 

가난의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은 신학을 가리켜 ‘해방신학’이라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가 거의 국교처럼 되어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1960년대에 시작된 신학의 흐름이다. 보프나 구티에레즈 같은 해방신학자들은 모두 가톨릭 학자들이다.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에서 확장되어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신학 운동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해방신학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설명하지 않겠다. 신학대학원 석사나 박사 과정에서 한 학기 공부할 내용을 여기서 다루기는 역부족이다. 그 신학의 기본 관점만 짚겠다.


해방신학은 말 그대로 왜곡된 경제 사회 구조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복음의 중심으로 이해하는 신학 운동이다. 특히 구조적인 악한 질서에 대한 실천적 항거가 중요하다.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가톨릭 사제들 중에서 과격한 이들은 실제로 무기를 들고 투쟁했다. 말만으로는 악한 구조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히틀러를 무력으로 제거하기 위한 단체에서 활동한 경우와 비슷하다. 악을 제거한다는 목적만 선하면 수단이야 폭력적이어도 괜찮은가,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런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반(反)폭력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지 해방신학이 라틴 아메리카의 악한 경제 구조를 실제로 정의롭게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다. 경종을 울리긴 했겠으나 큰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나 신학은 효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해방신학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 없다. 교황청은 해방신학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 교황 바로 앞에 교황이었던 분이 교황청의 교리성 대표로 있을 때 대표적 해방신학자인 보프와 신학 논쟁을 벌였다. 결국 교황청은 보프에게 해방신학 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징계를 내렸다.


한국의 민중신학은 해방신학과 비슷한 신학 노선을 취한다. 해방신학이 주로 조직신학자들에 의해서 추구되었다면 민중신학은 성서신학자들, 특히 신약신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안병무 박사가 그런 인물이다. 모든 민중신학자들이 신약학자라는 말이 아니다. 제1기 민중신학자들이 민중개념을 신약성서에서 찾은 것만은 분명하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은 가난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입장을 보인다. 인간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차이점은 민중신학의 민중개념이 지나치게 메시아적인 관점으로 경도되었다는 것이다. 민중신학에 의하면 민중이 곧 메시아가 될 수 있다. 민중의 해방을 말한다는 것과 민중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경제 문제를 추상화, 관념화했다. 내세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내뱉는 영혼구원이라는 구호가 현실의 왜곡된 경제 질서를 등한시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예수만 잘 믿으면 하늘나라에 간다는 식이다. 바알 숭배를 엄금한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가난과 부의 왜곡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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