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은 예수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놓고 생각해야 한다. 팔복만이 아니다. 성경은 모두 역사적 배경이 있다. 예컨대 구약을 읽을 때는 BC587년에 일어났던 바벨론 포로 사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 신앙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절대자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했는가, 선택받은 민족에게, 또는 무죄한 이들에게 왜 불행이 일어나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구약성경이라 할 수 있다.
예수가 살던 시대는 로마 제국이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던 때였다. 로마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이다. 제국의 시저는 개인과 피식민지 국가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했다. 아우구스투스(BC 63-AD 14)가 로마를 통일한 이후 1,2세기에 걸쳐 로마는 안정적으로 지중해 인근 국가를 지배했다. 예수 출생 시에는 아우구스투스가, 공생애 중에는 티베리우스가 황제로 재임했다. 로마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로마의 평화다. 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헤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피식민지 사람들은 자유를 허락받았다. 로마의 평화를, 즉 로마의 국기를 흔드는 세력은 박멸을 원칙으로 했다. 로마는 반(反)로마 범죄자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선고했다.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이게 아이러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관심이 있었던 예수가 반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십자가에 처형되다니. 초기 기독교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여전히 로마 체제 아래서 살아가야 할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 처형이 엄청난 불이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는 그것을 신앙의 토대로 삼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수의 가족에 대해서도 별로 말이 없다. 그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의 역사성만은 놓치지 않는다. 아니 십자가 사건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할 정도이다. 로마제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그 사건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로마의 힘이 떨어졌는가? 로마의 관용정신이 그만큼 더 넓어졌는가?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다미선교회 교도들처럼 열광적이어서 물불을 가릴 줄 몰랐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