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증명이라는 말도 별로 명확한 게 아니다. 법원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라. 검사는 피의자의 범행사실을 증명하려고 하고, 변호사는 무죄를 증명하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증명들이 허위로 떨어진다. 과학도 모든 걸 명명백백하게 증명해내지 못한다. 성서언어는 증명의 차원이 아니라 고백의 차원이다. 허망한 사실을 고백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을만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단 믿을만하게 설명할 책임이 신학에게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성서 언어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고백이며, 믿음이다.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에 근거해서만 그 확실성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말씀은 공허한 외침에 떨어진다. 장마철마다 개울을 건널 수 없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오지 마을이 있다고 하자. 몇 가구가 살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다리를 놓기도 힘들다. 그런데 어느 날 다리가 놓인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마 대다수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도지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때부터 이 소식은 동네 사람들에게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수의 말이기에 믿을만하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의 성서읽기는 예수의 운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이 왜 인류 구원의 유일한 통로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의 공생애는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개인 삶의 실패이기도 하고, 예수 사명의 실패이기도 하다. 팔복이 말하는 가난한 자의 전형이 십자가다.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된 운명이 십자가다. 그래서 예수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쳤다. 모두에게 저주받은 인생의 외침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야말로 수치의 징표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앞에서 당혹해 하던 제자들은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예수를 통해서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절대 생명을 경험했다. 그것은 예수 부활이다. 이 부활의 빛에서 그들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궁극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가르침은 예수의 부활과 연결된다. 부활의 빛에서 저 말씀은 진리가 된다. 부활의 빛이 없다면 가난은 저주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였던 것처럼. 결국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한 이해는 부활 이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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