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목)
삶(14)
‘예수 우리의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무슨 뜻인가?
원칙적으로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1) 예수 믿으면 죽어 천당에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2) 지금 살아 있을 때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은 천당, 혹은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만 보자.
이것보다 먼저 왜 예수를 믿어야 그게 가능한지도 대답해야 하는데,
이미 앞에서 비슷한 대답을 했으니까 여기서는 그만두고
천당, 천국, 하나님 나라에 얽힌 이야기만 하자.
죽음 이후의 어떤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는 하지만
그게 무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기독교인들도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믿다가
생각이 깊어지면 그것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다.
그래서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장례 모임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려고
고인이 하나님 품에 안겼다고 말하는 정도다.
죽음 이후의 생명은 아무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성서도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않는다.
물론 완전히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구약에 비해서 신약은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인 생명이 그들에게 분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복음서와 서신이 말하는 내용을 통해서
죽음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그것도 역시 비유로 언급되기도 하고
또한 더 근본적으로는 죽음 이후의 생명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생명까지 포함하는 어떤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한 궁극적인 생명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말하는 거지
죽음 이후의 생명을 딱 끊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부활은 곧 죽음 이전과 이후의 경계가 무너진 사건이라는 뜻이다.
위에서 좀 복잡한 이야기를 했는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좋겠다.
죽음 이후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거기서 큰 상급을 받아서 영원히 평안하게 사는 게 아니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일치로 들어간다.
그게 천국 가는 거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과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모두 먼지가 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일치라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우리가 모두 물이 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일치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잘 모르니까
이 세상에서의 반대급부 논리로
죽음 이후의 천당을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뭘 이루어야겠다는 지나친 욕망에 치우치지도 말고
허황된 기대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유에 맡기면 된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선이다.
그걸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게 믿음이다.
라는 의미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내 자유로 하나님을 정하여놓고 고뇌하지말고
하나님의 자유에 실려다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