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바닥 경험

 

라인홀트 메스너(1944년 생)는 이탈리아 출신 산악인이다. 그는 1986년에 세계 최초로 높이 8천 미터 이상 되는 히말라야 14좌를 정복했다. 정복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품에 안겼다고 하는 게 맞다. 어쨌든 그는 무산소와 단독 등반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는 산악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8천 미터 이상 되는 산에 오르려면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 특히 네팔 현주민인 셰르파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셰르파들은 몇 군데 베이스캠프에 물품을 조달하는 작업만이 아니라 마지막 정상 정복 순간에도 함께 한다. 산소가 희박한 정상에 서려면 산소통은 필수다. 보통 사람들은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메스너는 이런 도움이 없이 14좌를 올랐다 해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필요한 것은 숨을 쉬고 체온이 유지되고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이다. 이중에 한 가지만이라도 기능이 안 되면 곧 죽음이다. 거꾸로 이들에게는 이것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없다. 이건 생존의 바닥 경험이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숨 쉬고, 혈액이 돌고, 손발 움직이는 데만 신경을 쓴다. 이게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만 몰두하기에 등반 과정은 그야말로 절정의 자유다.

 

이런 경험은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주어진다. 자궁에서 직접 숨을 쉬지는 못하지만 탯줄을 통해서 어머니의 피를 공급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속해서 손발을 움직인다. 그것이 태아에게 생존 조건이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기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신생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산악인들이 목숨을 담보한 채 산을 오르려는 게 아닐는지.

 

생존의 바닥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 경험과 비슷하다. 구원 받는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높은 산에서 숨 쉬고 혈액이 돌고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듯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 외에 더 이상 다른 것을 구하지 않는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노후 설계에 대한 염려도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숨 쉬는 게 급한 사람에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자들이 왜 세속을 버리고 유랑을 선택했는지, 또는 고립된 수도원 생활을 선택했는지도 이런 데서 알 수 있다. 목사가 할 일이 많기는 하나, 그리고 나름으로 할 일은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는 아무런 행위도, 아무런 소유도 필요하지 않는 영적 바닥의 경험으로 부단히 돌아가야 한다. 사실 엄격하게 말해서 원하든 않든, 또는 노력하든 않든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바로 그 경험을 하게 되어 있다. 그걸 미리 현실로 살아내는 게 기독교 영성이 아니겠는가.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3446 목사공부(104)- 영성에 대한 오해 Aug 07, 2014 1675
3445 목사공부(103)- 시인의 영혼 Aug 06, 2014 1391
3444 목사공부(102)- 영혼에 대해 Aug 05, 2014 1487
3443 목사공부(101)- 시편 23편 Aug 04, 2014 2851
3442 목사공부(100)- 시인이 되라 Aug 02, 2014 2007
3441 목사공부(99)- 산에 대해 말하라 [10] Aug 01, 2014 2023
3440 목사공부(98)- 산이 부른다 [6] Jul 31, 2014 1880
3439 목사공부(97)- 하산의 위험 Jul 30, 2014 1493
3438 목사공부(96)- 하산 [2] Jul 29, 2014 1570
3437 목사공부(95)- 에베레스트 정상 [2] Jul 28, 2014 1800
3436 목사공부(94)- 가깝게, 멀게 [4] Jul 26, 2014 1876
3435 목사공부(93)- 산의 허락을 받아야 [2] Jul 25, 2014 1769
» 목사공부(92)- 생존의 바닥 경험 Jul 24, 2014 1720
3433 목사공부(91)- 자기 축소 [2] Jul 23, 2014 1836
3432 목사공부(90)- 압도당함 [6] Jul 22, 2014 2213
3431 목사공부(89)- 산악인과 설교자 [3] Jul 21, 2014 1923
3430 목사공부(88)-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 Jul 19, 2014 1600
3429 목사공부(87)- 하나님을 모르는 목사 Jul 18, 2014 1948
3428 목사공부(86)- 하나님 경험에 대해 Jul 17, 2014 1607
3427 목사공부(85)- 몸과 영으로서의 인간 Jul 16, 2014 1526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