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라
하나님 경험은 설교자인 목사에게만이 아니라 기독교인 모두에게 필수다. 기독교인의 삶은 바로 이것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소리를 배우는 소리꾼의 운명이 득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과 같다. 문제는 하나님 경험이 물건처럼 손에 잡히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 경험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는 하나님 경험이 있었지만 그걸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경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단답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목사공부>는 바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인 셈이다. 집필이 끝나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대답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서는 일단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시인이 되라.’는 대답을 하겠다.
시인이 되라는 말이 멋있게 들리긴 하지만 목사에게 그렇게 시급하거나 적절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언어 감각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에게나 어울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기도 전문가가 되라거나 인격적인 내공을 쌓으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목사는 다른 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시를 쓰라는 게 아니라 시인의 영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 시인의 통찰력, 시인의 언어 능력, 시인의 공감능력 등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시인의 영적 시각이 없으면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다. 이 사실을 나는 횔덜린, 릴케, 하이데거, 조병화, 고은, 안도현, 황지우 등에게서 배웠다. 더 근본적으로는 구약의 시편 기자들에게서 배웠다. 따지고 보면 성서기자들은 모두 시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