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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5)
내일(또는 일 년 후나 10년 후) 내가 죽었다고 상상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가족들과 교회 신자들이 장례식을 거행할 것이다. 장례식은 따지고 보면 죽은 이를 위한다기보다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죽은 이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 경험되는 이 세상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장례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을 모을 게 아니라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절차를 밟아서 화장하고, 남은 재는 납골당 같은데 두지 말고 산이나 강에 뿌리는 게 가장 간편할 것이다. 당장은 아내와 딸들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모두에게 좋아 보인다.
내 몸을 의학실험용으로 내놓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 의학도들이 내 몸을, 비록 죽은 몸이지만, 마음대로 다루는 게 꺼림칙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니다. 죽은 몸이 불에 타든지, 아니면 땅에 묻혀 박테리아에게 먹히든지, 병원 실험실에서 해부되든지 아무 차이가 없는 거 아닌가.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발소에서 내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것을 어떤 사람이 모아서 불에 태우거나 다른 화학약품으로 녹인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 때문에 내 몸이 고통스럽지도 않고, 마음이 아프지도 않다. 나에게서 떨어져나간 머리카락은 지구 안에 있는 다른 사물들처럼 일종의 질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쨌든지 죽은 내 몸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내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