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에

조회 수 1298 추천 수 0 2017.05.17 20:48:45

517,

후미에

 

설교 중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잠시 언급했다. 당시 일본 가톨릭교도들은 후미에를 밟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밟지 않으면 순교당해야만 했다. 후미에는 예수상이나 마리아상을 부조로 새긴 목판, 또는 철판을 가리킨다. 선교사로 온 사제도 밟았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포르투갈 해외선교부에서 파송된 사제도 밟았다. 그들은 예수로부터 용서받는 환상을 본다. 슈사쿠는 배교 행위를 한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흔적을 남긴다는 메시지를 거기서 전한다. 내가 그 소설을 직접 읽은 게 아니고 그 책을 소개한 이의 해설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다. 후미에를 밟느냐 밟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 거기에 한정되지 않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기독교 신앙이 자칫하면 노이로제(신경증)를 야기한다. 믿음이 좋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이런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심리와 정서는 선악에 대한 구분이 과도하다.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는 판단이 엄정하다. 심지어 술 담배를 신앙의 기준으로 여기기도 한다. 평생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경향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공격적인 경향을 보인다. 자신은 늘 옳은 걸 지키지 위해서, 즉 후미에를 밟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공격한다. 인간의 심리는 그렇게 움직인다. 기독교 역사에 벌어졌던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 사냥이 한 전형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후미에를 밟느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영혼을 집중하느냐 다른 것에 한눈을 파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태양빛과 비가 내리듯이 우리가 혐오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도 임한다. 문제는 그 은총을 그들이 거부한다는 데에 있다. 파렴치한 행위를 합리화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레벨:21]주안

2017.05.18 11:12:33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후미에를 밟는 것은 물론

주님의 은총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레벨:4]선비다움

2017.05.22 20:21:13

정확히 말하면 후미(踏み)는 밟는다는 뜻이고, 에(絵)는 그림을 말합니다.

그림(초상)을 밟고 지나간다는 말이죠. 물론 거꾸로 에후(부)미라고도 하고요.

하도 손상이 심하니까 나중에는 대용으로 나무나 철판등을 쓴 것으로 압니다만... 


엔도 슈사쿠에 대한 평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죠.

어쨌든 유럽에서 기독교를 접한 엔도가 부성적인 기독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일본인에 맞는 모성적인 기독교를 찾아 내려고 애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7.05.22 21:55:12

선비 님의 설명으로

후미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언젠가 꼭 시간을 내서 슈사쿠의 <침묵>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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