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14-29, 믿음 없는 세대

조회 수 7751 추천 수 0 2009.07.11 22:41:55
 

95.4.30. 

믿음 없는 세대

막 9:14-29


예수님이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소위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나머지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고함을 높이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특히 서기관을 중심으로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서기관들에 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학식과 사회적 지명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별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보자 사람들이 함께 그에게 몰려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자초지정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 부터 간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아비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웠을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발작을 시작하면 거품을 내뱉고, 이를 갈며,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언제 어떤 사고를 만나 죽을지도 모를 만큼 병세가 심각했습니다. 지금이야 간질병이 무엇인지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치료의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 당시는 이 사람이 열을 올려 말하는 것 처럼 귀신의 조화라고 밖에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을 용하다는 의원들에게는 다 보였지만 별로 나아지는 조짐도 보이지 않던 차에 혹시나 하고 예수님에게 보이려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셨기 때문에 대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보였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간질병으로 거품을 물고 사는 아들을 고치고 싶어 하는 이 아버지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제자들이 고쳐주기를 바랬을까요.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간질병 아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력하게 간질병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신바람이 난듯 제자들을 몰아 세웠을 것입니다. 이 아이와 아버지를 둘러싸고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입씨름을 한창 하고 있는 중에 때 마침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 사람의 설명을 듣고 예수님은 거기 모인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19절). 예수님 앞에 선 그 아이는 다시 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심히 경련을 일으키고, 땅에 뒹굴면서 거품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언제 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묻자 그는 자기 아들이 어릴 때 부터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정도로 심했다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22절)라고 하소연 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고 말씀하시면서 그 아이의 간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일이 끝난 후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질문하기를, 왜 자기들은 그 아이를 고칠 수 없었는가,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9절)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상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도 예수님과 관계된 많은 치유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복음서의 치유사건은 일반적으로 처음 부터 예수님이 직접 고치는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일단 제자들의 능력이 검증받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 다릅니다. 제자들은 왜 이 아이의 간질병을 고치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그 대답을 예수님이 그곳에 모인 이들을 향해 던진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믿음이 없는 세대란 무능력의 세대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간질병 앞에서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 간질병 아이와 그 아버지는 애를 태우고 있지만 제자들은 무능력 할 뿐입니다. 믿음이 없음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뜻합니다. 간질병 하나 어쩌지 못하고 서로 입만 열고 떠드는 그 무리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대조적인 두 실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광란이며, 다른 하나는 무능력입니다. 간질병 아이는 시시로 거품을 물고 자빠집니다. 핏기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도 역시 간질병 아이 처럼 광란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르완다에서는 8천 명의 난민이 무차별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독가스 사건이 아직도 미해결인 채 남아있고,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미연방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미시간 민병대’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터진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는 다시 떠올리기도 부끄럽고, 속상하고,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중학교 학생들 수십명이 그렇게 죽는다는 건 이런 문명 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디 이런 일들만이겠습니까? 기회만 닿으면 서민들을 속이고, 세금을 횡령하고, 직권을 남용하여 착복하고, 합법을 가장하고 교묘히 치부하는 일이 어디 드믄 일입니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산더미 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 시대가 미치지 않고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무언가 좋아지고 풍요로워져 가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광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간질병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라고 말한 것 처럼 귀신이 우리를 그렇게 요동치듯 흔들어 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광란 앞에서 우리가 무기력하다는 것입니다. 간질병 아이를 앞에 놓고 난장판이나 벌이던 예수님 당시의 그 사람들 처럼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하나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절대적 무기력증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대형사고가 연발로 터진다는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대형사고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정부와 단체에서 발벗고 나선다 하더라도 그게 말 처럼 쉽지 않을 뿐더러 아예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간질병을 고치지 않고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거품을 틀어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의 사회처방이 단순히 증상요법에 머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다리가 끊어지면 부실시공이 어떻다, 감독소홀이 어떻다고 말합니다. 비행기가 떨어지면 악천후에 무모한 착륙시도였다, 비행사의 기술부족이다, 라고 말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만 그런 건 아무리 고쳐도 인간이 또 다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것을 다루는 인간을 바꾸는 일입니다. 살아가는 자세를 바꾸는 일입니다. 기술이 조금 떨어지는 건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만 삶의 자세가 잘못되어 있는건 아무리 해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시대는 고도의 문명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정말 무기력합니다. 인간을 약간 즐겁게 만들고 소비하게 만들고 자만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진실하게, 능력있게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새로워 지는 길은 다른 데 있는게 아니라 바로 <믿음>에 있습니다. 간질병 아이를 못고친 이유는 아주 당연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고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데 인간이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건 종교적으로 교양을 쌓아가거나, 아니면 살아가는데 좀 편리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과 전혀 차원을 달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건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걸 뜻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간질병 앞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정말 심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능력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무능력합니다. 간질병 아이를 앞에 두고 쩔쩔 매던 제자들과 서기관 처럼 말입니다.


2. 믿음 없는 세대는 자기를 믿고 삽니다.


겉으로 보면 이 세대는 대단히 능력적입니다. 자기 자랑거리를 만드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무능력하다는 말은 패배주의자들의 하소연 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인간이 얼마나 자기의 능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고 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땅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바다 속도, 하늘도 역시 인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생명공학이 생명을 창조해 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우리가 해낸 업적으로 우리 스스로 놀랄 지경입니다. 도시 곳곳 마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고, 승용차 산업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앞서 있습니다. 이제는 극동의 조용한 나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끼고 싶어서 최대한도로 경제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각 기업에서도 효용가치가 낮은 사원들과 경력 사원을 떨어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동기사원이라 하더라도 자기 능력 껏 연봉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인정이고 사정이고 없습니다. 무조건 그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만이 평가기준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자랑거리인듯 마구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나친 경쟁 구조로 되어진 우리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서 처질까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직장인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교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라도 무언가 업적을 올려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학자들은 지금과 같은 경쟁력 강화는 멀리 내다 볼 때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아마 거의 확실할 것 같습니다. 똑똑한 사람만 대우받은 사회란 오래 지탱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믿는 세대는 교만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으니까 자신만만 합니다. 신세대의 특징이 바로 그런 자신감이라고 하는데, 그 자신감이 도에 넘치면 교만이 됩니다. 그게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교만합니까? 이 세계를 자신이 구원할 것 처럼, 이 나라를 자기만이 구원할 수 있을 것 처럼 외쳐댑니다. 이것이 바로 사이비 메시아니즘입니다. 그런 거짓을 우리가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도 여전히 그런 세대를 추종하고 있으니 눈에 보일 리 없습니다. 보인다 하더라도 그게 좋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자기업적에 대한 확신으로 부터 벗어나는 결단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건 반대로 자기의 능력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며 사는 게 능력이라고 보이지만 실상을 참된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능력이란 그런 데서 나오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자기 능력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 세계를 혼자 구원할 수 있을 것 처럼 큰 소리 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교회 자체를 전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끼리 서로 이해타산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빙자해서 자기 이름을 드러낼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많은 돈을 들여 신문에 일년 동안의 부흥회 스케쥴을 광고합니다. 자기가 그 만큼 능력이 많다는 걸 나타내려는 것입니다만 웃으운 일이 아닌가요? 500명 돌파 세미나 광고가 실리기도 합니다. 그걸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두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개는 자기의 사업에 불과합니다.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신앙생활이 즐거워 집니다. 문제는 결국 자기입니다. 자기를 나타내려 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자주 짜증스러워니고,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아주 무능력하게 됩니다.


간질병 아이를 고치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29절). 이 말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신유능력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잘못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어떤 신기한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는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간질병과 같은 이 세대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버는 능력이나 권력을 잡는 능력이 아니라 간질병 같은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할 때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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