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23:23-32, 거짓말

조회 수 11029 추천 수 1 2009.07.31 22:06:28
 

1996.4.14. 설교

거짓말 

렘23:23-32 


교사와 정치인과 성직자는 말을 많이 하고 삽니다. 방송인들도 역시 말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만 대개 주어진 원고에 따라 말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자기 방식으로 말하는 이들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교사와 정치인과 성직자는 그만큼 실수할 가능성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또한 말을 자신의 존재근거로 삼기 때문에 말을 부풀리게 되고 그러다가 엉뚱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게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이들은 그것이 바로 자기의 인격이라는 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인군자 처럼 살아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만 훌륭한 인격자라 할 수 있습니다.


1. 본문이해

구약시대에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요즘의 성직자들과 같이 서로 입장이 달랐습니다. 모두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구약성서는 특히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이 칼 처럼 날카롭습니다. 가능한대로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고 거짓 예언자들을 가혹하리만큼 비판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그 어떤 행위 보다도 거짓 예언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부패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하게 예언자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설교자들 사이에 그런 갈등을 보이면 덕이 없거나 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설교비판이 금기시되고 있습니다만 구약시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예레미야를 보십시요. 예레미야는 자신과 같은 예언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 예언자들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비수 같은 비판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에게 사랑이 부족해서, 덕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예언이란 장사하는 일과 달라서 단순히 매상만 많이 올리면 되는 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진리론에 근거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잘못된 예언으로 부터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비판은 두 낱말에 모아집니다. 하나는 ‘거짓’(25,26,32)이며, 다른 하나는 ‘몽사’(25,27,28)입니다. 예레미야의 비판을 받고 있는 예언자들은 ‘거짓몽사’를 예언하였습니다.

 

2. 우선 몽사에 대한 말씀을 들어봅시다.

1) 꿈(몽사)이 참된 예언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꿈으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꾼 꿈(창28:10-17), 요셉의 꿈이 그 예입니다. 예레미야는 꿈 자체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꿈이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한국 교회는 신비주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꿈이나 환상을 중요한 신앙의 근거로 삼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이들은 ‘내가 계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계시나 신비한 어떤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 몽사는 경우에 따라서 거짓입니다. 이런 신비주의에 물들어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자칫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2) 자기주장만으로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25절 말씀-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예레미야는 그 당시 많은 예언자들의 소리가 ‘마음의 간교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26절).

그리스도인들은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언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라고 해서 모두가 진리일 수는 결코 없습니다. 실제로 인간적인 생각을 설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별로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말 같지 않은 설교가 못마땅하지만 순종하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아마 한국 교회에서는 이런 경우가 아주 많을 것입니다. 설교랍시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가고, 비타협적인 고집장이로 만들고, 타종교를 적대시하게 만들고, 자기집단에만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만들어 갑니다. 이런 설교는 아무리 영감이 풍부하고 설득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설교는 사이비 종교에서 아주 성공적입니다. 박태선장로, 문선명, 영생교주인 조모 씨 등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설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믿는다고 해서 그게 믿음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문제는 예언자들의 말이 진실한가, 거짓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거짓 예언, 거짓 몽사를 하나님이 치십니다. 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무리 능력 있는 몽사, 예언, 설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거짓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용없을 뿐만 아니라 그걸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우리의 말이, 우리의 행함이 거짓인가,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런 진리의 기준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설교가 참된가 아닌가 하는 기준보다는 내 맘에 들어맞는가, 혹은 재미있는가,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바치기만 하면 훤씬 더 많이 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공짜가 없습니다.’, ‘주의 종에게는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물질과 건강의 축복도 반드시 주십니다.’ 이런 설교는 대개가 거짓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아주 세속적으로, 물질주의적으로, 출세지향적으로 만들어갑니다. 이런 설교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갓바위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말을 듣습니다.

4. 거짓말은 우리의 존재근거를 허위의식으로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인격의 기초가 허물어집니다. 거짓 예언은 거짓말의 기초가 됩니다. 거짓 예언과 거짓 설교가 판을 치게되면 이 사회는 거짓말이 홍수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거짓말이 진짜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감사원 6급직원인 현준희씨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효산종합건설의 콘도미니엄 건설허가 특혜의혹을 폭로했습니다. 장학로 씨에 의해 압력이 가해져서 감사원이 감사를 포기했다는 내용입니다. 감사원 측에서는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양쪽의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셈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경우는 아주 많았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많은 후보자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공천헌금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 뇌물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고 주장이 엇갈립니다. 12.12와 5.18 재판에서도 그렇습니다. 전두환 씨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그들을 제압하려 했던 정승화씨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이번 재판과정을 보면서 거짓말이 판을 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부터 인간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거짓말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정직과 진리보다는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쉽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능력 보다는 정직과 진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거짓 몽사와 거짓 예언을 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좀 부족해도 거짓말만은 하지 말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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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7]paul

2010.08.26 13:13:25

목사님 저 역시 말이 많고 또 부풀리기를 좋아하고 엉뚱한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조그만 이익에 아무 생각 없이 덥석덥석 남의 말을 잘 따라 순간 다른 사람들이 괞찬아 하면 그만 따라하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고 싶지만 잘 안되네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따라서 세상을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쫓아 살 수 있을까요?

[레벨:3]fide

2022.09.18 20:32:24

오랜만에 와서 글을 남기네요..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끄는게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어렵네요.


에릭프롬의 말처럼 자유로부터의 도피인것인지... 노예의 근성인것인지... 어렵기만 하고 빛을 보기가 참으로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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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2.09.20 20:07:51

fide 님은 교역자이신가 보군요.

'무척이나 무척이나 어렵네요.'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로 받아들입시다.

어둠의 바닥으로 더 내려가다보면 

예상 외의 곳에서 빛을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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