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적 금욕이었는데
고대에서는 자유분방한 성의 자연주의가 널리 퍼져있어
어느 철학도 이것을 저지할수가 없었지만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성적인 것을 부정하고
금욕을 칭찬하게 되었군요.
여덟째 어거스틴에게 결여된 하나의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서
그의 철학과 신학에는 그리스적 자연과학의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네요.
그러한 사실을 어디서 찾을수 있나보면,
1)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나 플로티누스처럼 이원론이
아니라 조정의 체계를 전개했고, 어거스틴은 이원론적 세계관이 그리스도교를 표현하는데
더 알맞은것이라고 이해한점 이군요.
2)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에 대한 강조이고
어거스틴은 교회의 공동체를 원했군요.
3)아리스토텔레스는 에로스적 엑스타시를 거부했고
어거스틴이 구한 금욕적 엑스타시 또한 거부하므로,
두극단 사이의 중용의 길을 구했네요.
4)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평적 차원의 사물의 관계를 다룬
과학을 간직했던 사람이고 어거스틴은
자연적 사물의 인식이 아닌 신과 혼의 인식이었군요.
5)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자였고 어거스틴은 직관적 사상가였네요.
6)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공간안에 주어진 실재에서
출발해서 추상성으로 올라가는 귀납적사상가, 경험론자였고
어거스틴은 신적인 것으로부터 경험적 실재로 내려오는
직관적 사상가였군요.
13세기 이후의 시대의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어거스틴이 서로 대립하는 형식으로 진전되었네요.
39강까지 5개월 정도되니, 영적 스트레칭이 조금 된듯합니다.
어거스틴의 사상의 발전과정중 일곱번째는,
그리스도교적 금욕이었는데
고대에서는 자유분방한 성의 자연주의가 널리 퍼져있어
어느 철학도 이것을 저지할수가 없었지만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성적인 것을 부정하고
금욕을 칭찬하게 되었군요.
여덟째 어거스틴에게 결여된 하나의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서
그의 철학과 신학에는 그리스적 자연과학의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네요.
그러한 사실을 어디서 찾을수 있나보면,
1)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나 플로티누스처럼 이원론이
아니라 조정의 체계를 전개했고,
어거스틴은 이원론적 세계관이 그리스도교를 표현하는데
더 알맞은것이라고 이해한점 이군요.
2)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에 대한 강조이고
어거스틴은 교회의 공동체를 원했군요.
3)아리스토텔레스는 에로스적 엑스타시를 거부했고
어거스틴이 구한 금욕적 엑스타시 또한 거부하므로,
두극단 사이의 중용의 길을 구했네요.
4)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평적 차원의 사물의 관계를 다룬
과학을 간직했던 사람이고 어거스틴은
자연적 사물의 인식이 아닌 신과 혼의 인식이었군요.
5)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자였고 어거스틴은 직관적 사상가였네요.
6)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공간안에 주어진 실재에서
출발해서 추상성으로 올라가는 귀납적사상가, 경험론자였고
어거스틴은 신적인 것으로부터 경험적 실재로 내려오는
직관적 사상가였군요.
13세기 이후의 시대의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어거스틴이 서로 대립하는 형식으로 진전되었네요.
39강까지 5개월 정도되니, 영적 스트레칭이 조금 된듯합니다.
영적인 근육이 붙으려면 쭈~욱 즐겁게 열공 해야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