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91쪽
https://youtu.be/cwtRZ27oYAo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발전과정중 셋째 요소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종교와 연결되어
헬레니즘화 시대에 발생했던 조로아스터의 예언과
플라톤주의의 영지주의적 형태의 혼합물인
마니교의 영향아래 있게 된것이네요. 마니교의 이원론이 죄를 합리적으로 해명해 준것으로 믿고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군요. 중세에서는 마니교사상에 영향을 받은 종파가 상당히 있었고,
오늘날에도 마니교의 경향이 눈에 많이 띈다고 하네요. 별의 규칙적인 운행과 우주의 조화를 보여준 천문학의 영향으로
어거스틴은 마니교를 떠날수 있게 되었고,
이 그리스적 원리가 동방의 이원론을 극복하게 했군요. 이것은 인간의 사고가 실재에 대한
동방의 부정적인 태도로 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뜻하는것이네요. 중세의 철학자나 신학자는 모두 천문학의 의미를 알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는군요. 와~ 놀랍네요. 패러다임 쉬프트라 할수 있겠네요.
이시대에 이미 극복된 이원론이 어째서 저를 그렇게 괴롭혔는지요. . . 넷째로, 고대적 전통이 사라진 다음에 철학적 이성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세계를 세우려고한 그리스철학의 부정적 종말을 의미하는
회의주의에 빠져 들어갔군요. 회의주의로부터 계시론에의 길이 열렸고
인식을 인간의 내면으로 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인식론도 생겨났네요.
그렇군요, 계시론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회의주의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 많이 와닿는군요.
다섯째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를 철학적으로는 지상적인 것으로부터 높여져서 궁극적인 하나와 합일된다는
소극적인 철학, 세계도피의 철학인 신플라톤주의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했군요. 그러나 순수한 신비주의자를 제외한 신플라톤주의자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인것이 혼의 내면에서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고 강조점을 뒤집어 놓았네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보이네요.
여섯째로, 회의주의의 파국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계시의 권위로 이끌어 갔고, 계시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로 구체화됐군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교회의 권위란 타율적인 힘을 지닌 권위가 아니라
고대적 회의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신율로 체험된 권위였네요.
역사는 살아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강독 또한 여운이 많이 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독의 여운 운운하시다니
뭔가 기독교 역사의 시원적인 것을 느끼셨군요.
쭈-욱 나가봅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발전과정중 셋째 요소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종교와 연결되어
헬레니즘화 시대에 발생했던 조로아스터의 예언과
플라톤주의의 영지주의적 형태의 혼합물인
마니교의 영향아래 있게 된것이네요.
마니교의 이원론이 죄를 합리적으로 해명해 준것으로 믿고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군요.
중세에서는 마니교사상에 영향을 받은 종파가 상당히 있었고,
오늘날에도 마니교의 경향이 눈에 많이 띈다고 하네요.
별의 규칙적인 운행과 우주의 조화를 보여준 천문학의 영향으로
어거스틴은 마니교를 떠날수 있게 되었고,
이 그리스적 원리가 동방의 이원론을 극복하게 했군요.
이것은 인간의 사고가 실재에 대한
동방의 부정적인 태도로 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뜻하는것이네요.
중세의 철학자나 신학자는 모두 천문학의 의미를 알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하는군요.
와~ 놀랍네요. 패러다임 쉬프트라 할수 있겠네요.
이시대에 이미 극복된 이원론이 어째서 저를 그렇게 괴롭혔는지요. . .
넷째로, 고대적 전통이 사라진 다음에 철학적 이성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세계를 세우려고한 그리스철학의 부정적 종말을 의미하는
회의주의에 빠져 들어갔군요.
회의주의로부터 계시론에의 길이 열렸고
인식을 인간의 내면으로 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인식론도 생겨났네요.
그렇군요, 계시론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회의주의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 많이 와닿는군요.
다섯째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를 철학적으로는
지상적인 것으로부터 높여져서 궁극적인 하나와 합일된다는
소극적인 철학, 세계도피의 철학인 신플라톤주의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했군요.
그러나 순수한 신비주의자를 제외한 신플라톤주의자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인것이 혼의 내면에서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고
강조점을 뒤집어 놓았네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보이네요.
여섯째로, 회의주의의 파국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계시의 권위로 이끌어 갔고,
계시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로 구체화됐군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교회의 권위란 타율적인 힘을 지닌 권위가 아니라
고대적 회의주의에 내포되어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신율로 체험된 권위였네요.
역사는 살아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강독 또한 여운이 많이 남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