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는 서방교회의 신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아버지로서 그가 만든
'히에라르키아' 라는 개념은
가톨릭의 히에라르키아 체제를 이루게 했군요.
존재론적 의미와 인식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적 사고의 장점인 이 체계를 그리스도교 안으로
이끌어 들였네요.
신인식의 길은 첫째, 긍정신학으로
신은 존재하는 모든것의 바탕이기 때문에
모든 이름은 신을 나타내고 신을 가르킨다는 것이며
둘째, 부정신학으로 신이 무엇인가
어떤 이름에 의해서 표시되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인데,
신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본질을 초월해 있으므로,
초본질적, 초실제적인 것이므로 모든 이름이 신을 가르킬때,
그이름들은 다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군요.
긍정신학, 부정신학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둘다 신에 관한 진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것 이네요.
교부시대 신학자들의 신학의 역사를 한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 방대한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는게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발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본 사람만이 그 발자국의 의미를
알수 있다고 믿기에 그런 생각과 느낌을 떨쳐봅니다.
예전에는 현재 내가 있는곳만 아니면 어디든지 다 좋은곳일것 같아서
동방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는 서방교회의 신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아버지로서 그가 만든
'히에라르키아' 라는 개념은
가톨릭의 히에라르키아 체제를 이루게 했군요.
존재론적 의미와 인식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적 사고의 장점인 이 체계를 그리스도교 안으로
이끌어 들였네요.
신인식의 길은 첫째, 긍정신학으로
신은 존재하는 모든것의 바탕이기 때문에
모든 이름은 신을 나타내고 신을 가르킨다는 것이며
둘째, 부정신학으로 신이 무엇인가
어떤 이름에 의해서 표시되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인데,
신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본질을 초월해 있으므로,
초본질적, 초실제적인 것이므로 모든 이름이 신을 가르킬때,
그이름들은 다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군요.
긍정신학, 부정신학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둘다 신에 관한 진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것 이네요.
교부시대 신학자들의 신학의 역사를 한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 방대한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는게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발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본 사람만이 그 발자국의 의미를
알수 있다고 믿기에 그런 생각과 느낌을 떨쳐봅니다.
예전에는 현재 내가 있는곳만 아니면 어디든지 다 좋은곳일것 같아서
어디론가로 헤메었지만,
지금 저는 제가 있는곳이 좋은 곳인걸 알겠습니다.
태양이 이 땅을 골고루 비추듯 하나님사랑도
그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