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을 끼쳤던 플라톤의 사상이
그 자신의 시대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의 철학이 역사적 실재성에 기초를 두지않고
순수 이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네요.
과거에 뿌리를 내린 관념적 형태의 사상은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수 없었고,
그의 '국가편' '법률편' 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상보다
퀴니코스학파, 회의주의학파, 스토아학파쪽이 훨씬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거군요.
플라톤에서 하나의 전통이 끝나갈때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새로운 전통,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어머니로 인해 연결될수 있게 되었네요.
둘째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를
연구함으로써 진리탐구에 대한 자극을 받게되었군요.
키케로는 창조적인 철학자가 아니었고 가치를 지닌 여러사상을
선택하는 절충주의 철학자였네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서의 신관념과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철학과의 종합을 이루어낸 사상가였군요.
중세뿐 아니라 그이후의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교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어거스틴은
데카르트,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꼭 기억하게 될것 같습니다. 오늘, 꽃들이 만개한 나무가 있는 동네공원이 참 좋아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발전과정을 보면,
첫째로 이교도인 아버지를 통해 이교전통의 위대성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교도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새로운 전통인 '새로운 고대' 의 대표자가 되었군요.
모든 그리스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 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쳤던 플라톤의 사상이
그 자신의 시대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의 철학이 역사적 실재성에 기초를 두지않고
순수 이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네요.
과거에 뿌리를 내린 관념적 형태의 사상은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수 없었고,
그의 '국가편' '법률편' 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상보다
퀴니코스학파, 회의주의학파, 스토아학파쪽이 훨씬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거군요.
플라톤에서 하나의 전통이 끝나갈때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새로운 전통,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어머니로 인해 연결될수 있게 되었네요.
둘째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를
연구함으로써 진리탐구에 대한 자극을 받게되었군요.
키케로는 창조적인 철학자가 아니었고 가치를 지닌 여러사상을
선택하는 절충주의 철학자였네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서의 신관념과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철학과의 종합을 이루어낸 사상가였군요.
중세뿐 아니라 그이후의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교신학의 터전을 마련한 어거스틴은
데카르트,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꼭 기억하게 될것 같습니다.
오늘, 꽃들이 만개한 나무가 있는 동네공원이 참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