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것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신이란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고, 주관 객관의 분열 이전에
인간의 내면에 현존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혼의 내부에는 자신을 초월하는 단적으로 변하지 않는것
신적인 바탕이 있으며,
진리는 인간혼의 내면에서만이 발견할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외적인 물질적 세계의 인식은 신을 인식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것 이네요.
인식이란 낮은 영들이 물질적 세계에 참여하고 있는것을 의미하며,
물질적 세계를 인식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사랑하며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것을 의미하는것 이군요.
그렇게 함으로써 신적인것에의 인식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 받으므로 비진리 안에 있게 되네요.
중세때 자연연구에 거의 공헌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지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연속에서 삼위일체의 구체화를 인식하는 한으로 사랑했군요.
그것이 자연과학이 침체되어 있게된 까닭이군요.
이런 인식을 예술을 통해 표현된 작품을 보면
자연과학의 시점에서 보는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분리와 재결합의 생명운동을 나타내어 자연에 있는
신적인 바탕을 보여 주려는 것이네요.
과학기술의 영향아래 있는 오늘날 예술 작품에서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예술표현이라고 하는군요.
어거스틴의 인식론을 보면
그의 종교철학이 혼안에 있는 직접적인 신의현존
(궁극적인 것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신이란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고, 주관 객관의 분열 이전에
인간의 내면에 현존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혼의 내부에는 자신을 초월하는 단적으로 변하지 않는것
신적인 바탕이 있으며,
진리는 인간혼의 내면에서만이 발견할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외적인 물질적 세계의 인식은 신을 인식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것 이네요.
인식이란 낮은 영들이 물질적 세계에 참여하고 있는것을 의미하며,
물질적 세계를 인식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사랑하며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것을 의미하는것 이군요.
그렇게 함으로써 신적인것에의 인식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 받으므로 비진리 안에 있게 되네요.
중세때 자연연구에 거의 공헌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지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연속에서 삼위일체의 구체화를 인식하는 한으로 사랑했군요.
그것이 자연과학이 침체되어 있게된 까닭이군요.
이런 인식을 예술을 통해 표현된 작품을 보면
자연과학의 시점에서 보는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분리와 재결합의 생명운동을 나타내어 자연에 있는
신적인 바탕을 보여 주려는 것이네요.
과학기술의 영향아래 있는 오늘날 예술 작품에서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예술표현이라고 하는군요.
어쩐지 2천년전의 사람들이 좀더 가깝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