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교회다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다비아에서 배운 내용들을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종종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깁니다.
그 때 문득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설명이 빈약해서 일까? "
" 내가 너무 다비아의 글들에 쉽게 설득당해 버린건가? 그래서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
제가 보기에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눈이 수건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3:16-17).
제가 다비아를 처음 알았을 때 저와 나이가 같은 '구도자'라는 닉네임을 가지신 여전도사님이 저에게 "천천히 따라와 보세요. 언젠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평생 그 마음의 눈이 수건으로 덮여져 깨달음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고후 10:5).
구도자가 되어 깨우치면 자기만의 지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선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에게 여기서 나오는 책이나 글들을 읽어보라고 하십시오. 이 우주에도 차원이 있듯이 믿음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차원에서 놀고 있을까,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빌 2;12).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영광의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에 이르는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요(고후 3:18). 마치 번데기에서 깨어나 나비나 매미가 되어 창공을 날아 다니며 노래하게 되는 것 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니체가 "탈피하지 못한 뱀은 죽는다."고 했듯이 자기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적인 진보는 없습니다.
다비아에는 부산 출신들이 몇 사람 있습니다. 저도 부산 출신이고요. 반갑습니다.
어제 예배 때 소유와존재 님 부부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설득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예수님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설득하지 못했거든요. ㅎㅎ
재미로 말씀드리면,
외눈 원숭이 마을에서는 두눈 원숭이가 놀림을 받는답니다.
편하게 살려면 한눈을 가리면 되고,
두눈을 뜨려면 그 마을을 떠나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