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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대하는 태도

성령강림절 조회 수 13981 추천 수 0 2011.07.18 2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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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태복음 13:24-30 

악을 대하는 태도

마태복음 13:24-30, 성령강림절후 5째 주일, 2011년 7월17일

 

     오늘의 제3독서가 포함된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몇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가 떨어진 네 가지 밭, 겨자씨, 누룩, 가라지, 밭에 감춰진 보화, 좋은 진주, 그물 등입니다. 비유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을 세상의 것들에 빗대서 설명한 것입니다. 천국은 절대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천국을 가리켜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씨를 뿌리고 모두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합니다. 가라지는 일종의 잡초입니다. 그 밭에는 이제 곡식만이 아니라 가라지도 같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종들이 이 상황을 주인에게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원수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에서 남의 밭에 가라지를 덧뿌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았겠지요. 이 이야기는 비유이기 때문에 실제 상황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종은 가라지를 뽑아내는 게 어떻겠냐고 주인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으니까 가라지를 내버려두라고 대답했습니다. 가라지가 가득한 밭을 상상해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보면 밭주인은 게으른 농부처럼 보일 겁니다. 실제로 가라지가 많으면 곡식은 건강하게 자라기 힘들고 결실을 맺기도 힘듭니다. 주인은 곡식이 다치는 걸 염려했지만 잘만 하면 가라지만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원당 농가에 가서 호미로 잡초를 뽑습니다. 잡초 뽑기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부분적으로 잔디까지 뽑히거나 다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잘만 하면 괜찮습니다. 잔디가 부분적으로 다쳐도 잡초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 가라지의 비유는 도대체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요?

     우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들 안에 가라지와 같은 이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곡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허물기도 합니다. 신앙의 형태가 다르기도 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이들을 교회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았습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교회가 시끄럽기도 하고 자칫 신앙이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내듯이 문제가 있는 이들을 퇴출시키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분파주의입니다. 가라지 비유는 바로 이 분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한국교회의 특징이 바로 분파주의입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150개 이상의 교파로 갈라진 상태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의 자살율이 가장 높듯이 개신교 교파 숫자도 가장 많습니다. OECD만이 아니라 전(全)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다른 나라 교회는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갈라지는 길만 찾아갑니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를 반대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WCC가 좌파적이고, 혼합주의적이고, 종교 다원적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계교회의 차원에서 보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들입니다.

     분파주의가 잘못이라면 이단들과도 무조건 함께 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신앙은 거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싸워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의 내용은 모두 이런 싸움의 결과입니다. 이런 싸움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아류로 떨어지거나 로마 신화의 한 종파로 떨어졌을 겁니다. 복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떨어져 나와야 할 때는 떨어져 나오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이들의 바른 태도입니다. 따라서 분파라는 말이나 현상만 놓고 옳다 그르다 하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입장에 있든지 분파적인 태도는 일단 복음의 열정과 순수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가라지와 같은 신앙과는 관계하지 않겠다는 뜻이니까요.

 

     악의 현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를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늘 만납니다. 이 세상에는 가라지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악입니다. 폭력이고 교만이고 야만이고 독선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을 온전히 따르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을 볼 때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습니다. 유대의 에세네파는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일종의 수도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낭만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가라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꿈입니다.

     그러나 가라지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범죄가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악은 마치 식욕과 성욕처럼 보편적인 힘입니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폭력성이 빈부의 차이나, 남녀의 차이나, 지식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파괴하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 적당하게 핑계를 대고 삽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가인을 보십시오. 아담은 왜 선악과를 먹었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이브에게 책임을 미룹니다. 그의 말은 결국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브는 뱀에게 책임을 미룹니다. 가인은 시기심으로 동생을 죽인 뒤에 동생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자기는 동생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똑같은 일들이 역사에서 반복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쟁을 하듯이 사회의 악을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이겠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일시적인 효과로 끝납니다. 역설적으로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흔합니다. 1980년대 초에 전두환 정권이 행한 삼청교육대나, 2003년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공격한 전쟁 같은 것들입니다. 악이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가라지가 곡식과 자라는 밭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회나 국가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간 개인의 차원에서도 가라지는 없앨 수가 없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늘 곡식만 맺으시는지, 가라지도 맺는지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만이 아니라 악령의 열매도 맺을 겁니다. 그런 것 때문에 불안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런 경향의 신앙을 가리켜 청교도주의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요즘처럼 뻔뻔한 시절에 자기의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는 삶은 귀중합니다. 문제는 자책에 시달리느라 성령의 열매까지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곡식까지 뽑는 것과 비슷합니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 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우는 소리를 냅니다. 죄를 회개하라고 청중들을 닦달합니다. 그런 설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일종의 자기를 학대하는 매조키즘 상태에 빠집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을 학대함으로 만족하는 새디즘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 소수자나 양심적 군 거부자와 좌파 향한 한국교회의 공격은 새디즘에 가깝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사도매토키즘’ 현상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악을 사회나 국가, 그리고 개인에게서 없앨 수 없으니 악과 타협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오늘 비유에서 가라지를 가만 두라고 한 주인의 말처럼 악과 더불어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일단 중요합니다. 악과 타협하는 것과 직시하는 것은 악에 대한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타협은 악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면 직시는 악의 준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나가서 끊임없이 대항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태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이 복음화가 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인지 모릅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도 여전히 파렴치한 일들이 그치지 않을 겁니다. 악의 준동을 예의 주시한다는 말은 종교의 껍질을 쓰고 있는, 국가의 껍질을 쓰고 있는, 지성의 껍질을 쓰고 있는 폭력과 거짓을 뚫어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폭력과 거짓이 교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여기 최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이 있다고 합시다. 병원을 운영하는 분은 투자한 경비를 빼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과잉 진료를 합니다. 조금 경과를 두고 봐야 하는 경우에도 비싼 검사를 받게 합니다. 가난한 환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이 사람은 교회에 잘 다니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추수 때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라는 밭과 같습니다. 밭의 주인은 가라지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하나님께는 그럴 능력이 없는 건 아닐까요? 오늘 이 세상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이 세상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산업재해를 당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 장애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외국인 노동자들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학력의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왜 이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두시는 걸까요? 왜 가라지를 뽑아내지 않으시는 걸까요?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럴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추수 때입니다. 30절 말씀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수 때는 곧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시는 종말입니다. 종말에는 생명이 지금처럼 숨어 있는 게 아니라 환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은 가라지와 곡식을 구분하기 힘들지만 그때가 되면 확연하게 구분될 것입니다. 가라지는 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단으로 묶이게 되고, 곡식은 곳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 개인에게 남아 있는 가라지와 같은 성품들도 제거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곧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그런 기다림과 희망이 있기에 가라지가 극성을 부리는 이 현실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 기다림과 희망은 단순히 먼 미래에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해주시겠지 하고 생각하는 미래주의가 아닙니다. 종말에 이루실 그 나라가 이미 여기에 온 것처럼 살겠다는 신앙고백이고 결단입니다. 이런 기다림과 희망만이 그리스인을 그리스도인답게 만듭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웬만해서는 가라지를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라지를 아무리 제거해도 여전히 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영적 실존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념하고 삽니다. 그런 체념이 반복되면서 성서의 가르침보다는 세상의 가르침을 훨씬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가라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허상입니다. 종말에 완전히 굴복당할 패잔병들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가라지를 방관하지도 마십시오. 그것들은 그럴수록 더 기세 등등합니다. 하나님의 승리에 기대서 힘닿는 데까지 가라지와 싸우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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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삐쭉이

July 19, 2011
*.182.131.202

심판의 날에 내안의 가라지가 뽑혀질 수 있다니 정말 중요한 깨달음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반복된 패배에 낙심할때가 많아요. 현실을 바로보게 하시고 하지만 희망을 상기시켜 주시니 힘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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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19, 2011
*.120.170.250

삐죽이 님,

우리의 개인적인, 사회적인 상처들이 모두 치유되는 종말이

지금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실감이 가지 않을 겁니다.

지금의 생명형식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종말론적 희망이 삐죽이 님의 영혼을 가득 채워

가라지가 지천인 이 세상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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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상수리

July 19, 2011
*.99.193.27

종말론적 기다림과 희망은 미래주의가 아니고, ...신앙고백이고 결단입니다..

...그런 체념이 반복되면서 ... 세상의 가르침을 휠씬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요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그 중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일종의 삶의 힌트라고 생각되는..TT.. 것만을 집중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이런 것이 깊은 사유없이 내용을 박제화하는 잘못된 버릇이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이러면 안되겠죠..^^ 

 

수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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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19, 2011
*.120.170.250

상수리 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일부만 기억하고

그것을 되새김의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지혜로운 겁니다.

그런 공부가 언젠가는

본인의 내공이 깊어지는 디딤돌이 되겠지요.

위 대글에서 '삶의 힌트' 운운은 조금 거시기 하네요. ㅎㅎ

나는 힌트를 드리는 게 아니걸랑요.

그럼 뭐지요?

그건 나도 모르겠네요.

어쨌든지 위 설교의 핵심을 정확하게 요약하셨네요.

요약이 아니라 발췌하셨군요.

잘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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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아우

July 19, 2011
*.179.178.110

목사님, 군입대 거부자에 대해서 질문해 보겠습니다.

군대를 거부하는 계층도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야 살생을 금하는 교리에 따라 군입대를 거부하니 이해할 만 합니다.

또 종교를 갖지 않은 분들 중에 전쟁 자체가 반생명적이라는 차원에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순수한 의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분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거부를 순수한 의미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물론 여호와의 증인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뭐라 할 건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여호와의 증인에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의 증인에서 가르치는 병역거부의 동기가, 성경적 세계관에 토대해 있지 않고

현시대 및 현정부는 사탄의 지배아래 있다는 전제아래,  군입대 행위 자체를 사탄에게 봉사하는 행위로 간주한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전쟁이 반생명적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면 종교인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이 세상이 사탄의 지배아래 있다는 전제가 과연 바울사도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한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입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공직생활을 거부한다는 점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이 과연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건강한 것인지

건강한 영성에서 나온 신앙적 결단으로 볼 수 있는지...의문입니다.

동기야 어떻든 결과만 보고 집총거부행위를 무조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일치 시킨 것이

제 눈에는 너무 심플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제 생각이 잘 못되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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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19, 2011
*.120.170.250

오메가 님,

여호와의증인에 대해서는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입장이 아니래서

오메가 님의 반론에 대답을 드리기기 쉽지 않네요.

핵심은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이 평화를 위한 비폭력주의라는 성경적 세계관이 아니라

선악이원론적인 세계관에 근거해서 집총거부를 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건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군요.

이런 말도 될까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선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서라면 총을 들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나는 개인으로 생각하기를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들 나름의 세계관에 근거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비폭력적인 평화주의를 위해서 집총을 거부하는 태도는

우리가 단순히 따라가기는 어렵겠지만

같은 종교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메가 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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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눈사람

July 20, 2011
*.23.36.90

군입대를 하지 않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강모군처럼 그냥 거부해도 되겠지만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테두리내로 들어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라는 울타리에 들어가면 얻어지는 것이 있거든요.

여호와의 증인으로 병역거부 후 수감되어있는 40여명과 일일이 면담하고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궤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민간 교도소에 수감되면 아주 편한 수감생활을 합니다.

서로 좋은 보직(?)을 맡으려고 자기들끼리 엄청난 싸움을 합니다.

사람이니까 어느 종교인이든, 그리스도인들도 말할 것이 없이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요.

 

오메가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 기피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호와의 증인들도 있겠지만...

이 시간에도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미안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라고 총을 들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반대로 병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 양심적이라는 말이 될 수 있지요..

그들은 양심이 없겠습니까?

그들도 할 수만 있다면 양심적이라는 탈을 쓰고 병역을 거부하고 싶을 것입니다.

 

설교 말씀중 양심적 병역거부는 주제도 아니고 소재도 아니고 그냥 조금 언급된 것에 불과한데

이와 관련된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설교 말씀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런 댓글 단 것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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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20, 2011
*.120.170.250

눈사람 님,

지난 번에 전화로 눈병에 대한 좋은 조언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군대 문제와 연관해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보이는 행태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신학 논문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그들의 속은 잘 모르고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건데요.

민간교도소가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군대에 가지 않는 대신 교도소를 택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안 그런가요? 상식적으로요.  

전과자가 되는 거잖아요.

공무원은 물론이고 웬만한 회사에 들어가기도 힘들 겁니다.

전세계에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거에요.

동서독으로 갈라져 있던 독일에도,

지금의 대만에도 그 제도는 시행될 겁니다.

내 기억으로 그렇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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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눈사람

July 21, 2011
*.23.36.90

마땅히 제가 답해드려야 할 것을 해드린 것 뿐인데요.

목사님께서도 제가 질문드리면 답변해주시잖아요^^

 

상식적으로는 군대에 가지 않는대신 교도소를 택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을 선택한 사람들은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여호와의 증인들이 교도소에 가면 일반 범죄자들과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제가 여기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군대에 가지 않으면 분명히 전과자가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에 들어간 후에 병역거부를 하지요.

전과 사유가 종교적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가 되니까요.

전과자이므로 공무원은 될 수 없겠지만,

기독교인이 하는 회사나, 병역 필한자라는 조건을 다는 곳이 아니라면

전과자라는 이유로 취업을 못하지는 않거든요.

 

동서독, 중국 대만의 상황과 남북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건 아시고 계시니깐..

우리나라도 빨리 모병제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제 아들놈은 4월 26일에 입대해서

지원도 하지 않았는데 700특공여단으로 배치되어 죽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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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김대원

July 19, 2011
*.171.220.63

아직 어리지만, 계속 보수적인 곳에서 신앙생활 했고, 가장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입니다.^^

맨날 설교와 설교비평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설교비평 책을 통해 먼저 접했었는데, 정말 설교비평에서 하신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구원행위를 선포하고 계셨군요.

 

항상 이런게 신학적인 설교구나 하면서 감사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전승,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단어를 읽으면 본능적으로 흠칫하지만,

어떠한 것을 설교해야 하는지. 항상 배우고 있습니다.

설교비평책에서 읽은 것처럼 조직신학-철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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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19, 2011
*.120.170.250

김대원 님,

신학생이에요?

음, 앞으로 갈 길이 멀군요.

내 설교비평 책과 설교를 그렇게 낯설지 않게 생각하는 걸 보니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과 삶의 본질을 어느 정도 맛보고 있는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면 내 자랑인가? ㅎㅎ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신학의 중심에 들어갔느냐,

그리스도 영성의 메인 스트림에 참여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일단 좋은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는 게 중요합니다.

본인이 그런 각오를 다지고 있으니

그 길을 잘 가리라 기대합니다.

잘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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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웃음

July 20, 2011
*.134.138.142

내용에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왜 천국이 씨나 밭이 아니고, 사람일까요? 

 

두번째는 "악인의 심판은 어찌되는건가요?" 가라지가 추수때 뽑힌다면  악인에게서도 그 성품(가라지성품)이 제거되는것으로  끝나는지 아니면 악인이 심판을 받는다는건지, 아니면 심판이란것이 또다른 의미라서 결국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악인에 대한 심판이라는것이 없는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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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20, 2011
*.120.170.250

웃음 님,

지난 주일 교회에 나오지 않는 표시를 내는군요. 표시를.

공부 시간에 첫 질문이 이미 나왔어요.

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ㅎㅎ

천국은 하나님 나라에요.

하나님은 곧 나라로 존재하시기에

천국은 곧 하나님이랍니다.

그러니 천국이 밭주인, 즉 하나님과 같다고 말하는 거지요.

두번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웃음 님이 이렇게저렇게 생각한 그것이 답이에요.

나의 개인적인 대답을 굳이 한다면,

아니 나의 희망을 말한다면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 때

악인까지 구원해주시기를 바라는 거지요.

어떻게?

그건 정말 내가 모르는 거에요.

마지막 때 악마가 완전히 제압당한다면

악인은 아마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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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웃음

July 21, 2011
*.144.235.50

감사해요 목사님^^

중국 다녀왔어요....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있다면 우리 모두 심판을 받아야겠지요?

모든 악인이 다 구원을 받을것으로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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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July 21, 2011
*.146.244.103

설교문에 대한 댓글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드네요.

하나님앞에 가라지와 알곡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앞에 가라지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곡으로 저희들을 불러 주시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네요.

출근길 도로주변에 몇 주 전부터 코스모스가 피어 있더군요.

무더위 속에 가을이 이미 와 있습니다.^^

더운날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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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21, 2011
*.120.170.250

ㅎㅎ 달팽이 님이

모든 논란을 한방에 날려버리셨군요.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라지와 같지만

알곡으로 불러주셨다는 말은

칭의론의 정곡을 찌른 거군요.

나의 가라지건,

너의 가라지건

우리 삶을 파괴하는 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겠지요.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다구요.

코스모스 잎에 우주가 꿈틀거리는 것 같네요.

오늘 밤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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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나노

July 22, 2011
*.208.236.195

목사님 안녕하세요? 거의 매일 다비아에 들어오는데 글은 두번째네요..

악의 존재는 우리가 어찌할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면서도

방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게 쉽지 않은것 같아요

적당히 모른척 하면서 타협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저를 봅니다.

제속에 그야말로 알곡과 가라지가 사이좋게 살고있네요..

하나님께서 싸울 힘을 주시길...

 

 

그래도 목사님 말씀 덕분에 하나님을 향해 제 영성을 바르게 집중할 수 있는

방향을 찾게 되고, 용기를 내게 된답니다.

요즘은 남편(바람)이 하는 말만 듣지 않고 저도 꽤 말을 많이 한답니다 ㅋㅋㅋ

늘 감사드려요~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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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22, 2011
*.120.170.250

나노 님,

잘 지내요?

남편 말만 듣지 않고 본인도 말을 많이 한다는 그 구절을 읽고

얼마나 재미 있는지 크게 웃었어요.

두 사람이 어떨지 상상이 가거든요.

목사 부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지 실감이 나요?

용감하게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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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July 24, 2011
*.220.104.49

가라지내가 형제,자매들에게 가라지 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亂射 했고 그들은 나를 향해 가라지 보다 더하다고 나를 향해 난사하는 말입니다. 내가 뱉을 때는 시원한 말이고

난사 당할 때는 아주 듣기 싫지만 내가 분명하게 지금 가라지가 아니라고 뭐라 말을 못하기에 일부는 참고 일부는 반론을 합니다.

눈에 띄게 드러난 가라지 보다 구분이 어려운 가라지와 살아간다는 게 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곡식 속의 가라지 인가 , 가라지 속의 곡식인가 헷갈리면서 때로는 어느 쪽과 타협을 하는지도 모르게 결국은 타협을 하고 맙니다.

잠깐 빗나간 얘기하나 해 봅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지사 하기 전에 출연했던 영화인데 프레데터(predator) 를 보면 보이지 않는 외계인 비슷한 괴물과 정글에서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적,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자체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을 주는 것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 실체를 알 수 있는 적이자 악인 가라지.

승리의 원동력이 힘이 아니다. 힘의 전문가는 악이다. 어디서 힘을 가지고 올 것인가.

영민한 머리보다는 불안하지 않는 마음이 우선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추수가 끝난 뒤 알곡으로 주님께 수확되는 것이 어제 끝났다.

그래서 기쁘다.

그리고 또 단에 묶인 그들…. 이 가라지들아!

이 기분, 이 느낌은 아주 중요한 악과 마지막까지의 승리의 변치 않는 확실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그들 악의 변화무쌍한 힘의 모습을 보지 못해 전전긍긍할 지라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른다.

() 고조 劉邦은 항우에게 70번 패했지만 마지막에 한신을 기용해서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항우는 한줌이 채 되지 못하는 조각으로

분리되는 꼴이 되었다.

오늘은 글의 내용이 다소 gladiator인양 건방진 분위기 입니다. 그래도 올립니다.

자유로운 글 폭력 기고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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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uly 24, 2011
*.120.170.250

ㅎㅎ 진인택 님이

자칭 자유로운 글 폭력 기고가로군요.

속에서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영성 기운들이

풍요로운 결실로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어제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집단 살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극단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15-20세 청소년들에게 총격을 가하다니요.

그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리가 빙빙 돕니다.

그 청소년들의 영혼을 주님이 붙드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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