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많이 추우시죠.
인도의 등잔으로 몸녹이세요.
빛의 축제일이던 지난 디왈리에 동네를 돌며
집집마다 켜 둔 등잔불을 찍어 보았습니다.
오늘 밤은 저 등잔불에 기대어서 깊은 잠을 자야겠군요.
청정지역에 있다가 점프를 해서인지 밤기침때문에 자꾸 잠을 설치네요^^
저 등잔을 켜 두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마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그리고 풍요의 복을 기원했겠지요.
그리고 저 등을 켜 두는 분들의 소망은 참 소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 우리네 부모님들이 들기름종지 등잔을 대문 밖에 켜 두고 가족의 무탈을 기원했듯이 말여요.
정월 대보름 전후에서 그런 것 같은데요?
저는 그 등잔불이 신기해서 한참이나 밖에 서서 구경을 하고는 했지요.
그 까막득한 시절이 다 지나갔는데 저는 그게 문득문득 그리운 거예요.
한번은 저의 어머니한테, 그 기름종지가 그립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도 무척 그립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모녀가 그 등잔불을 재현해 보기도 했답니다. 방안에서요.^^
불빛을 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의 따스함이 물씬 느껴지네요.
녜, 선교사님,
우리 인생도 그럴까요?
오늘은 좀 우울한 소식을 접했네요.
아니 우울한 소식이라기 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구요.
친하게 지냈던 교우님이 플루확진을 받고서는 이내 유서를 썼다고 하더군요.
예고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유서를 작성하는 일 밖에 없는가,
그런 생각으로 하루해를 보냈네요.
저도 오늘 이 방을 종일 들낙거리면서,
등잔불과 친구했네요.^^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화가 밀려 왔습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몸을 태워서 누군가를 밝게 비춘다는
"사랑"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가서,
돌아올 식구들을 위해 처마밑에 호롱불을 켜 놓고
기다리던 우리 부모님들 마음처럼요.
아, 선교사님,
이 노래 아시지요?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왔던,
우리는 이렇게 불렀드랬지요^^
"데얼 이즈 램프 샤이닝 브라잍, 인어 캐빈 인더 윈 도우 이즈 샤인 잉 훠 미,
앤 아이 노우 댓 마이 마 덜이즈 프래잉.."^^
오늘밤에는 이 노래나 불러재껴 볼라구요^^
오두막집 창가에 빛나고 있는 등잔 하나
나를 위해 빛나고 있네
그리고 나는 안다네
그건 바로 엄마가 기도하고 있다는 걸.
참 좋은 노래네요.
만물을 통하여 창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 만물을 통해 생명,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열린 눈과 마음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다비안이 된 덕 톡톡이 보고 있는 셈이지요.
저도 감기몸살 증세가 와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움츠리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 눈이와서 예년보다 7도나 떨어졌답니다.
그래도 최저 15도지만 추운 느낌입니다.
체질이 인도화되었나 봅니다.
건강은 건강할때 지키자~~
라라집사님도 건강하세요.
목사님.
교회에서 촛불을 켜시는 군요.
그 예전을 이 겨울 저희 교회에서도 도입해야 하겠습니다.
인도의 양초 겸 향초(피면 향이 나는 초)는 정말 아름답답니다.
인도 영화 데브다스에 나온
아쉬아라이가 든 디와(등잔)을 올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선교사님^^
이렇게 다비아에 들어와서 선교사님의 글을 읽게 되니 더욱 다양한 인도의 세계를 접할 수 있어 감사하네요.
어느 종교이든 빛의 신비감 앞에서는 모두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 세상의 참빛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되어 각 사람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 진리 앞에 고개가 숙여지며 겸허히 빛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비록 이 아름다운 불빛들이 우상을 위해 쓰여지는 도구가 되버렸지만
빛은 빛 자체의 정체성으로서 어둠을 몰아내며 참빛되신 예수님에게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빛이 되어 이 세상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믿음 안에 생명을 담아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인도땅에 선포합니다.
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