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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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가장 이상한 기도 … 7
1장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 19
2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49
3장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 85
4장 당신의 왕국이 오소서 … 115
5장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149
6장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 183
7장 우리의 빚을 탕감하소서 … 217
8장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 247
에필로그: 가장 이상한 책 … 277
부록 … 289
옮긴이의 말 … 290
옮긴이의 말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해 수백만의 생명들을 단기간 내에 “살처분”하면서도 고기값 오르는 것에 신경을 쓰는 염치없는 세상이다. 우리들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시장전체주의 속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양심만이 아니라 의식마저 마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번 겨울에는 북극의 얼음이 더욱 많이 녹아내린 결과, 삼한사온은커녕 한 달이 넘도록 강추위가 계속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도, 더군다나 과학자들은 30년 후에는 지구평균기온이 섭씨 2도가 상승하며, 60년 후에는 섭씨 4도가 상승하게 되어, 어떤 끔찍한 재앙들이 닥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이미 누누이 외치고 있지만, 에너지 절약운동이나 대체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은 찾아볼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다.
국제 자본의 약탈만이 아니라 “가이아의 복수”로 인해 세상의 약한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지만, “생존주의”라는 두터운 성채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 이웃이나 세상, 혹은 역사에 대한 관심도 없고 절망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저항할 의지도 없을 만큼 대량 소비사회의 일차원적 욕망의 대중들이며 속물들이 되어버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떼죽음과 양심이 마비된 세상 속에서 종교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옛 사람들은 “후천개벽의 조짐”을 분별하고 하늘의 뜻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을 시절, “주님의 기도”에 관한 크로산의 책을 번역하면서, 예수의 타는 목마름과 서릿발같은 눈매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하늘의 질서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제국의 권세로 인해 세상이 피바다를 이룰수록, 성전마저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릴수록, 예수가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고백한 기도가 ‘주님의 기도’였다.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하며,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주님의 기도’를 왜곡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종교가 되었는지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상황은 예수가 맞서 싸웠던 당시의 세상 제국의 권세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나 더 막강하고 교묘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익이든, 기술의 발전이든, 제국의 영광이든 간에,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언제나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자들로서 결국에는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 되어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만다는 사실 역시 틀림없는 하늘의 뜻이다. 이런 파괴적인 인류 문명 속에서 예수의 복음을 통해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한 크로산의 노력은 <하나님과 제국>(2007)에서 시작되어, <첫 번째 바울의 복음>(2009)을 거쳐 <가장 위대한 기도>(2010)로 이어지고 있다.
흙으로 사람을 빚고 그 코에 천천히 조심스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번역하는 동안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도와준 저자가 참 고맙다.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은 폴 니터 교수가 사용하는 말처럼 창조주의 가족 세상(Kindom of God)이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