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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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것일까?
부활과 승천의 구조를 동일한 맥락에서 접근하든 그렇지 않든,
경륜적 삼위일체의 신학적 성찰이 반영된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의 서술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종말론적인 물음에 이르게 된다.
왜 오늘이 아니라 그 날인가.
과연 우리에게 미래로부터의 존재론이 가능할 것인가.
이와 같은 종말론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에
언제쯤 그리고 어떻게 익숙해 질 것인가.
때와 기한에 대해 묻고 있는 성서기자들의 고뇌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
과연 그날이 언제일까,
하나님께서는 왜 지금이 아니고 그 날에 그 일을 이루시려는 것일까.
구름이 걷힐 날은 언제일 것인가.
구름을 헤짓고 '그대로 오시리라'던 그 분을 우리는 뵐 수 있을까.
그 하나님 경험은 도대체 무엇일까.
너희의 알바가 아니라는 성서기자의 확신에 말문이 막힌다.
그들이 경험한 부활 사건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확신할 수 있을까.
바울처럼 우리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활경험과 시간의 문제를 붙잡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면 좋으련만,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분께서 그대로 오실 그날을
지금 여기에서 알 수 없을지라도
확연히 눈이 뜨일 것이다.
그날까지 성령께서 도우시기를,
그날까지 겸손한 증인으로 살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그날까지 뭇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오랜만에 나눠봅니다.
샘터와 다비안들이 그리운 부활절기간.
풀 벌레 소리가 그리운 나미.
한편의 성스러운 詩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