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11일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12:1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이 말씀이 오용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는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난 7,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앞에서 한국기독교는 이런 이원론을 분리에 근거해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반독재 투쟁을 치열하게 펼쳤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침묵했습니다. 이런 시대의 침묵은 동조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이렇게 군사독재 정권 앞에서 침묵을 지킨 이유를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고 두 가지 관점으로 압축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이유로 신학의 문제입니다. 한국기독교는 개인구원을 그 기본에 깔고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는 여기서 종속 변수로 떨어집니다.
다른 하나는 분단체제입니다.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데에는 북한 공산당을 피해서 남으로 내려온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끼친 영향력이 큽니다. 그들은 북한 공산정권 아래서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반공과 일치시켜서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 남한의 군사독재 정부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북한 공산정권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종의 필요악이었습니다. 더 큰 악을 막아내기 위해서 작은 악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개인구원이라는 내적인 요인과 분단체제라는 외적인 요인의 결합으로 인해서 정치와 종교의 이원론적 분리를 신앙의 중심으로 받아들인 한국교회가 사회변혁의 영적인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요즘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stigma의 상처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상처를 이데올로기적인 신앙의 도그마로 사용했던
대륙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있었단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