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20)

조회 수 2391 추천 수 1 2010.04.16 23:19:16

하나님 나라(20)

 

 

교회에 성령이 주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주장했다거나 지금 성령의 임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성령의 현실성을 좁히려는 현대의 경건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항거해야 한다. 성령이 마치 보통의 인간적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초자연적 지식과 경건의 모호한 원리인 것처럼 말해지고 있다. 우리는 성령을 인간 인식의 허약성을 보충하는 어떤 종류의 구멍마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견해를 거부한다. 성령은 이성을 포기하기 위해서 숨어야 할 어떤 엄폐물이 아니고, 또한 종교적 주관성의 비합리성에 대한 위장도 아니다. 성령의 활동은 종교적 경험의 내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판넨베르크, 하나님 나라와 교회, 121 쪽)

   

    교회가 ‘성령 공동체’라는 말을 그대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요. 이렇게 숙제를 낼 테니, 마음이 동하면 일주일 안으로 한번 풀어보시구려. “교회는 성령 공동체다.”라는 명제를 다른 사람이 알아듣도록 A4 용지 10장 정도의 분량으로 써 보시오. 10장이 많으면 5장으로 줄여드리겠소. 그것도 많으면 2장이오. 그 이하는 안 되오.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신앙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소. 그래서 성령 공동체 같은 신학 용어가 나오면 금새 머리를 아파하오. 이런 현상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라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대도 기분이 언짢을 거요.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려면 반드시 신학적으로 깊이가 있어야 하느냐고 말이오. 일반 신자들은 살아가기에도 바쁜 데 어떻게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느냐고 말이오. 그런 거는 목사들이나 열심히 공부해서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오. 할 말이 더 있으시오? 옳소. 신학 공부가 없어도 신앙생활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소이다. 그런 공부가 평신도들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소. 모든 사람이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어야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 듯이 말이오. 그런 전문적인 식견은 해당되는 사람이나 잘 하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요.

    그런데 말이오. 이런 게 있소이다. 우리가 모두 의사들처럼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갖출 수는 없지만, 인간 몸과 그 치유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알고 있는 것이 좋소이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을 하면 의학적인 메커니즘을 알 수 있소. 그걸 알고 있으면 의사의 도움을 받을 때 모르는 사람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날 거요. 물리학도 그렇고, 문학과 예술도 그렇소.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거는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오. 그게 인문학적 훈련이 아닐까 하오. 신학도 그런 관점에서 신자들에게 필수적인 공부라오. 최소한의 신학적 훈련이 없으면 신앙의 왜곡을 피할 수 없소이다.

    위에서 판넨베르크는 성령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말하고 있소. 두 가지요. 하나는 성령의 현실성을 세계 전체에서 말하지 않고 단지 종교적인 경건성에만 한정하는 것이오. 다른 하나는 성령을 이성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오.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성령 이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그대도 눈치 챘을 거요. 이는 마치 아버지를 단순히 용돈을 주는 분으로만 알고 매달리는 철없는 자식과 비슷한 거요.(2010년 4월16일, 금요일,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나날들)


[레벨:9]용남군

2010.04.17 11:10:38

목사님의 글 중에 ‘성령충만과 알코올중독’이 참 재미있었는데 생각나서 옮겨봅니다.


[ … 술에 취한 사람의 현상은 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거나 다른 하나는 오히려 감정이 예민해져서 매우 전투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되면 2차, 3차로 가고, 종업원들에게도 팁을 듬뿍 준다. 마음이 느슨해진다는 증거다.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은 싸움을 자주 벌인다. 술이 그만큼 그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는 증거이다.


성령 공동체라고 자처하는 교회도 역시 이런 증상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나는 자기 분수에 넘치게 헌금을 한다거나 자학적인 정도로 헌신하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 이런 요소들을 믿음의 열매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이 마비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현상은 교회 공동체가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매우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 천호동에 있는 광성교회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기독교는 매우 호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경우를 자주 보인다. 성령의 공동체인가 알코올 공동체인가? … ]

그런데 성령을 ‘성령님’이라고까지 부르면서 어떤 다른 인격적 대상으로 이해하는 게 옳은 일인가요?
성령은 곧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거듭난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하고 생각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993 4.19 혁명 50주년 [2] 2010-04-19 3124
1992 하나님 나라(21) [1] 2010-04-17 2381
» 하나님 나라(20) [1] 2010-04-16 2391
1990 천당 방문기(6) [1] 2010-04-15 2132
1989 천당 방문기(5) [5] 2010-04-14 2579
1988 천당 방문기(4) [4] 2010-04-13 2464
1987 차를 마시며 [3] 2010-04-12 2445
1986 지성적 기독교인의 정체 [11] 2010-04-10 4073
1985 아, 대한민국 검찰! [3] 2010-04-09 2584
1984 2010년 부활절 공동 기도문 [1] 2010-04-08 5132
1983 헨리 나우엔의 기도문(1) [1] 2010-04-07 7395
1982 하나님 나라(19) 2010-04-06 2423
1981 다시 부활에 대해서 [1] 2010-04-05 3286
1980 부활이 믿어지나요? [1] 2010-04-03 3214
1979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 [4] 2010-04-02 3526
1978 하나님의 나라(18) [2] 2010-04-01 2431
1977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문 [2] 2010-03-31 3816
1976 다시 4대 강 정비사업에 대해 [5] 2010-03-30 2318
1975 콩나물국 [5] 2010-03-29 2877
1974 밥 먹기 [6] 2010-03-27 2714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