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1)- 종교적 인간

조회 수 5291 추천 수 1 2010.05.03 23:10:38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그대에게 읽어드리겠소.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 1945년 4월9일 바이에른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했소이다. 죄명은 히틀러 암살 도모였다오. 목사요 신학자인 사람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히틀러를 제거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놀랍소. 그는 오늘로 말하면 행동하는 진보 신학자인데, 한국의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의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게 신기한 일이오. 아마 본회퍼의 영성에 매료된 탓일 거요. <옥중서간>은 본회퍼가 옥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쓴 편지 묶음이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그의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편집한 책이오. 본회퍼의 신학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씩 설명하겠소. 오늘은 직접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읽도록 합시다. 가족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주로 감옥 안에서의 일상적인 것이고, 친구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신학적인 거요. 우리는 아무래도 후자의 것을 읽어야겠소. 내가 참고하는 책은 1967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왔는데, 윤리학자인 고범서 님이 번역했소. 원서 이름은 <Widerstand und Ergebung>이오. 직역하면 <항거와 복종>인데, 번역서의 제목은 <옥중서간>으로 달렸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내가 조금 손을 보겠소.

 

 

오늘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주일(Totensontag)이다. 그리고 대림절이 다가온다. 대림절에 대해서는 우리들가 여러 가지 공통된 아름다운 회상을 갖고 있다. 어쨌든지 감방은 대림절 상황에 가장 어울린다. 기다리고, 희망하고, 이것저것 해본다. 결국에 가서는 그런 것은 대단한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문은 닫혀 있고 밖으로부터만 열린다. 이런 생각이 바로 지금 내게 떠올랐다. 여기서는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본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마 자네가 놀랄 것이라고 생각하만 말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나는 다른 사람과 식탁을 함께 하기를 아쉬워한다. 내가 자네에게서 받은 모든 좋은 것도 여기서는 자네와 식탁을 함께 했던 때에 대한 회상으로 변한다. 식탁의 사귐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근본적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의 실현이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아침과 저녁 기도 시간에 ‘십자가를 긋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는 루터의 권고를 내가 자진해서 행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그것 때문에 ‘종교적 인간’이 되지는 결코 않을 테니. 전혀 반대야. 종교성에 대한 나의 불신과 불안은 여기에 와서 전보다 한층 더 커졌으니까.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게 되고, 그 의미를 점점 깊이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터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와 그 밖의 교부들의 글을 대단한 관심을 갖고 읽는 중이야. 그들은 어떤 점에서 종교개혁자들보다 훨씬 더 현재적인 동시에, 개신교와 가톨릭 신앙의 대화를 위해서 기반이 되니 말이야.(1943년 11월21일)

 

     그대는 본회퍼 신학의 특징이 ‘비종교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요. 그는 종교적인 경건생활에 성실한 태도로 대했지만 종교성에 매몰되지는 않았다는 거요. 경건생활과 비종교화의 차이를 아시겠소? 앞으로 본회퍼의 글을 많이 읽게 될 테니, 오늘은 이만 하는 게 좋겠소.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온다는 사실을 점점 또렷하게 의식하면 감옥에 갇혀 있던 30대 후반의 젊은 목사요, 신학자가 삶과 하나님을 어떻게 대면했는지를 천천히 따라가는 것도 우리의 영성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소.(2010년 5월3일, 월요일, 열기가 가득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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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10.05.04 11:22:29

감사합니다

[레벨:28]첫날처럼

2010.05.04 12:58:16

비종교화... 요즘 너무도 절실히 그 필요성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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