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13)

조회 수 2817 추천 수 2 2010.05.28 23:00:30

 

대략 13세기에 시작된 인간의 자율성 운동은 지금 최고조에 달했다. 인간은 이제 모든 중요한 문제에서 ‘신이라는 작업가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과학과 예술과 윤리의 문제에서 아주 명확한 사실이 되고 말았다. 백 년 전부터 그것은 가속도를 내면서 종교적인 문제에도 적용되었다. 만사가 ‘신’ 없이도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마치 과학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영역에서 신은 끊임없이 그 활동 범위를 억제당하고 있으며 지반을 잃고 있다. <중략> 성인이 된 세계를 향해서 세계는 신이라는 후견인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문제’, 즉 죽음 같은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되며, 그 문제에는 신만이 답을 줄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신과 목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가서 그런 문제가 더 이상 궁극적인 것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면, 즉 신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본회퍼, 옥중서간, 200 쪽, 1944년 6월8일)

 

     본회퍼가 쓴 위 글은 지금부터 벌써 66년 전의 것이오. 그가 제시한 문제는 오늘날 훨씬 심각하게 되었소. 본회퍼는 아마 컴퓨터나 배아 복제 같은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거요. 지금 사람은 거의 절대적인 능력을 소유한 존재처럼 살아가고 있소. 물론 지금도 죽는 건 똑같지만 언젠가는 불사의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야망을 품고 있소. 예컨대 인간의 성체 복사가 실현된다면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르오. 죽음의 문제 역시 지금 기독교가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생명공학적인 차원에서 해명이 된다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떻게 되는 거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뒷방늙은이가 되는 거요? 이미 그런 방식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많이 등장했소.

     그대는 이에 관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좋소. 본회퍼의 표현대로 후견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부정될 수는 없다오. 왜 그런지 아시오? 하나님은 인간이 밝혀낸 과학적인 사실 너머에 존재하시기 때문이라오. 인간이 닿은 사실보다 앞에 계시다는 거요. 더 근본적으로 사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밝혀낼 수 없소. 모든 것이 밝혀지는 때는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내는 순간이오.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전통적인 하나님 이해에 고착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오. 본회퍼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을 ‘작업가설’로 세워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오. 작업가설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이오. 쉽게 설명하면 이렇소. 동성애를 기독교인들이 죄라고 여기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성끼리만 결합하게 해 놓으셨다고 믿기 때문이오. 창조원리가 그렇다는 거요. 이런 게 바로 작업가설이오. 이제 전혀 다른 시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동성애를 적대시하면, 성인이 된 세계에서 기독교는 미숙아 취급을 받게 될 거요.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추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오. 성숙한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성숙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소. 시대정신은 늘 옳은 게 아니오. 자연을 도구화하고, 자본을 절대화하는 시대정신은 거부해야 하오. 본회퍼가 말하는 성인이 된 세계는 주로 과학적인 사실들을 가리키오. 지동설과 진화론 같은 것들이오. 어른이 되면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더 이상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오늘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요구되는 종교심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소. 기독교는 더 철저하게 이런 시대에 준비를 해야 하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성숙해져야 하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 것 같소? 종교적 세뇌가 통한다고 생각하지 않소? (2010년 5월28일, 금요일, 시원한 바람과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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