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뭐꼬?

조회 수 2776 추천 수 1 2010.06.15 23:44:48

 

     지금 내 책상 위에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소. 그중의 하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하나님 이야기>요. 정가가 700원이고, 발행연월일이 1973년 12월5일이오. 내가 만으로 스물한 살을 바로 앞에 둔 때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신학생 시절이었소. 저 책을 사들고 책상 앞에 앉았던 그 시절이 눈에 선하구려.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읽어볼 요량으로 내 서재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 어제 꺼내서 먼지를 털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소.

     내가 오늘 그대에게 릴케의 책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오. 37년이라는 세월을 말하고 싶소. 그 세월이 뭐요? 그 사이에 나는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목몇몇 교회에서 목회자로 살았고,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었소. 그런 흔적으로 37년이라는 세월을 확인할 수 있겠소? 그런 것을 확인하느라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것이 아니면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말이오.

     그런데 말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37년의 세월이 너무 빨라서 그런 세월이 실제로 있었는지 느낌이 분명하게 오지 않소. 내가 어디 연극 무대에 잠간 올라갔다가 내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소. 삶이 그림자와 같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헛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하게 되오. 그대가 젊다면 이런 말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거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시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인지. 우주의 나이가 보통 120억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 계산도 따지고 보면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오. 우주의 시간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시간과는 다를 거요. 120억년이라는 숫자도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 같소. 시간 역시 상대적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소. 잊지 마시오. 언젠가 우리의 시간 경험이 완전히 허물어질 때가 온다오.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일 수도 있고, 더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마지막일 수도 있소.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바로 그런 순간이오. 신앙적인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과 일치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요.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될 거요. 그걸 영생이라고 하오. 깊이 생각해 보시오. “시간이 뭐꼬?”(2010년 6월15일, 화요일, 늦은 저녁 비 쬐끔) 


[레벨:3]비오는저녁

2010.06.28 00:39:16

 

단지

 쇠락해 가는 나이의 징조라고만은 여길수 없었던 그 지독했던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준것이

별들의 나이였다는_

이제껏 배워왔던 그 메마르고 황폐한 종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확실히 질서뿐 아니라, 짐작할 수 도 없는 혼란(인간의 표현으로 말하자면)으로 가득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나를 안식하게 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0.06.28 10:30:38

비오는저녁 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비오는 저녁은 황홀한 순간이지요.

지구와 인간은 철저하게 외로운 존재들이지요.

그걸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해야만

세계 창조주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아닐는지요.

'메마르고 황폐한 종교...'라는 표현은 정확합니다.

안식을 찾으셨다니

행복하신 분이시군요.

주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레벨:3]비오는저녁

2010.06.28 22:18:00

인사도 없이 불쑥 들어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요.

 

 오랫만에 살아있는, 살게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만지면서

참  맛있는 식사를, 축제를 공짜로 누렸으면서...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제대로 된 인사를 드릴 수 있을지.

 

저는 달리 죽음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작년 한해를 제 인생의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 학교, 교회, 스승들..)에게 묻는 것을 멈추고, 제 스스로 질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도 성경도 과학도..처음 만난 사람처럼, 처음대한 세상처럼 공부했습니다.

 

생명, 영원한 생명, 죽음과 부활, 우주와 나..

이것들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가 되지 못하는 현대문명이 과연 진보한 것인지.

저한테는, 생명이란 말, 그 말이 노동자의 팔 다리 근육처럼 생생한 실제인데요..

 

비오는 저녁무렵은,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는...

떠돌이 제 영혼의 쉬는 시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0.06.29 00:14:54

비오는저녁 님,

짧은 글이지만 대글이 예사롭지가 않군요.

'처음대한 세상처럼' 공부하셨다구요.

그게 핵심이랍니다.

돌도 처음 본 것처럼 대하면서 살아야지요.

물도 처음이고, 나무도 처음인 것처럼이요.

사실 지구와 우주 전체가 유일회적인 것이잖아요.

자신이 떠돌이 영혼이라고 느끼는 분이라면

이미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안식을 맛보신 분이랍니다.

먼 데서 사시네요.

새롭게 시작한 삶을 풍요롭게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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