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묵상에서 사람이라고 해서 짐승들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소. 모두 땅에서 나왔으며 땅에서 나온 것을 목소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렇소. 창세기 기자도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소. 우리는 그것을 일단 인정해야 하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없다는 말은 아니오. 다른 게 많소. 질적으로 다르다고 봐야 하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오. 도대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오? 라틴어로 하나님의 형상은 Imago Dei라 하오. Imago는 영어로 image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개념의 하나는 질료와 형상인데, 거기서 형상은 form이오. image와 form이 다른 단어지만 신학적으로는 서로 통하오. 양쪽 모두 어떤 근원적인 존재의 능력을 가리키오.
사람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이 형상이오? 겉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오. 영혼일지 모르겠소.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는 분이시니 그 흔적이 사람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소. 영혼이라는 말 자체도 좀 모호하오. 영과 혼을 구별할 수도 있지만 똑같은 말이기도 하오. 그냥 영이라고 하면 되오. 사람의 영은 무엇이오?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소? 쉽지 않을 거요. 사랑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생명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소. 우리는 아직 사람의 영이 무엇인지, 영적 작용이 무엇인지 다 아는 게 아니오.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뿐이오. 예컨대 시간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든지, 죽음과 영생을 인식하는 것이 그것이오. 동물은 아무리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시간 개념이 없소. 그래서 그들에게는 역사도 없소. 그들은 오직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오. 사람은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소. 그 소외가 바로 영적인 능력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소.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오? 이건 신학의 오래된 질문 중의 하나이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지만 타락 이후로도 계속하는지의 여부는 서로 입장에 따라서 크게 갈리오. 가장 전통적인 입장은 전적인 타락이오. 하나님의 형상까지도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뜻이오. 이와 대립하는 입장은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오. 아마 앞으로도 이 두 입장은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게 될 거오. 각각 설득력이 있소. 왜 그런지는 오늘 설명하지 않겠소. 그대가 스스로 생각해보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창세기의 진술을 기억하시오. 그것이 얼마나 역동적인 진술인지를 그대가 알았으면 좋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