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지는 목사라고 한다면 그는 목회를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 목사는 목회 행위에 존재론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목회의 기쁨을 얻는 사람이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까닭이 있겠는가.
이게 과연 현실 목회에서 가능하겠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교회 구조가 열악하면 아무리 뛰어난 영성의 목사라고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목사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교회 구조도 거기에 따라줘야 한다. 성장 구조로 고착된 교회에서 목회를 수행의 차원에서 밀고나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구조가 바뀌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변화를 향한 몸부림이 전제됐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지금처럼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는 두 세대가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목사 개인들이 용맹정진의 자세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침몰하는 배 안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대목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걸 알아야 자신의 현재 목회 행위가 수행의 차원에서 작동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 지금 당장 그 문제로 들어가지 않겠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것은 <목사공부>의 모든 것이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둘째, 이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다. 셋째, 이 문제는 이렇게 지나가면서 한두 마디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