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목회
앞에서 나는 목사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목사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인 예배와 설교, 그리고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히 설교자로서 목사의 영성이 깊어지기 위해서 신학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신학공부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철학공부가 필수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공자 왈 투의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40년 동안 신학생으로, 교수로, 목사로 살아온 경험에서 나름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전했을 뿐이다.
이제는 목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앞의 이야기가 이론이었다면 이제 할 이야기는 실천에 속한다. 어쩌면 앞의 이야기보다는 이제부터의 이야기가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신학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교회와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신학은 교회의 기능이라는 바르트의 말처럼 신학과 영성은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와 직결되어 있다. 신학이 있기 전에 교회가 있었다. 신학은 교회로부터 나와서 교회를 섬겨야 한다. 목사는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예수는 좋아하지만 교회는 싫어한다. 이런 분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교회에 정나미가 떨어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목사가 목사답지 않다거나, 신자들이 이기적이라거나, 교회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울 정도의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 많다. 그런 것만 보면 교회에 발을 담그기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신중한 태도가 아니다. 신자들의 구체적인 모임인 교회공동체가 아니고서는 기독교 신앙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좀더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올 것이다.
오타 바로잡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아니라" - '있는'과 '아니라' 사이에 '게' 또는 '것이'가 빠졌음.
"신자들의 구체적인 모임이 교회공동체가 아니고서는" - "신자들의 구체적인 모임인 교회공동체가 아니고서는"
다음 편도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