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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읽기(2)
흔한 말로 책읽기는 세상에 대한 간접 경험이다. 외떨어진 원당의 내 집에서, 또는 평생 교회 마당만 밟고 살았던 탓에 직접 경험할 수 없었던 세상을 <토지>를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나 스스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세상과 삶이 그 소설에 들어 있었다. 루터나 바르트의 글처럼, 또는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바흐의 피아노 작품처럼 <토지>는 이야기꾼 박경리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어떤 세상을 전해준다. 그 이야기에는 수없는 사람들의 운명이 서로 얽혀 있다. 그게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금 없는 강물처럼 온갖 사물도 매듭 없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은 소를 몰아붙이며 밭둑길을 걸어오고, 늙은이는 채마밭에서 서성거리고, 장정들은 풀을 베어서 돌아온다.(11권 123쪽)
‘눈금 없는 강물’이라는 표현이 이 소설에 자주 나온다. 각자는 자기의 삶이 특별하다고 여기겠지만, 물론 특별한 일들이 없진 않지만 큰 흐름 안으로 녹아들뿐이다. 전염병이 돌아 떼죽음을 당해도, 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해도 여전히 강은 흐르고, 새는 날고, 달은 뜬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쉬지 않듯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강물이라고 생각하면 그 강물에 던져진 각각의 인생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 거대함에 어쩌면 저항할 수 없고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작디 작은 존재가 우리 사람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