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사람은 걷는다. 사람만이 두 발로 걷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다. 침팬지와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호모 에렉투스, 즉 직립인이 바로 오늘 인간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뛰어나서 인간으로 진화된 게 아니라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어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손이 자유로워졌고, 무거운 뇌를 소유하게 되었고, 성대가 발달하게 되었다.

 

어머니 자궁에서 밖으로 나온 아이는 대략 일 년 정도 되면 걷기 시작한다. 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걷게 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엄마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발걸음을 띠는 연습도 한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다. 발목과 종아리에 힘이 붙고, 중심잡기가 가능해지면서 아이의 걷는 능력은 급속도로 발전하다. 걷는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다.

 

나는 테니스장에서 뛸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는 대개 걷는다.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 층계를 한 단씩 밟아야 한다. 그때 중심을 잃거나 발이 미끄러지면 곤란하다. 아직은 한 번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크게 넘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원당은 워낙 마을 주민들이 없고, 방문객들이 없어서 걷기에 좋다. 거치적거리는 게 없다. 나는 젊은 시절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아직까지는 걷는 게 어색하지 않다. 천천히 걸으면서 중력을 느낀다. 중력이 없다면 나는 쉽게 기우뚱댈 것이다. 걸으면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물과 자연을 본다. 나무, 외양간, 빈집, 개울, 구름 등을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걷는 연습을 하던 갓난아기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좀더 지나면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누워 있을 것이고, 더 지나면 어머니 뱃속의 태아로, 더 가면 배아로, 그리고 내 몸은 지구의 원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걷는다. 황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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