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듣는다.

 

나는 매일 뭔가를 듣는다. 이 세상에 소리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우리 집 창호는 이중 겹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나는 웬만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빗소리도 안 들린다. 방 위치에 따라서 약간 다르긴 하다. 조립으로 지은 부분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잘 들린다. 그러나 나중에 철근골조로 증축한 부분은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동네 어느 집에서 나는 닭소리와 개소리는 들리기는 하지만 개미소리처럼 아주 작게 들려 수면에 방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기차소리는 제법 확실하게 들린다.

 

소리를 들으려면 집밖으로 나와야 한다.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걸 바람소리라고 해야 할지, 대나무소리라고 해야 할지 어렵다. 바람과 대나무가 어우러진 소리겠지. 새들이 대나무 숲에서도 노래하고 퍼덕댄다. 매일 아침 창문 아래서 먹이를 달라고 우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듣는다. 수놈은 별로 소리를 내지 않는데 비해서 암놈이 소리를 자주 낸다.

 

요즘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설거지 할 때 듣는다. 접시나 밥그릇을 세제 묻힌 수세미로 닦은 뒤에 맑은 물로 헹굴 때 정말 예쁜 소리가 난다. 그냥 물만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릇에 묻은 거품을 손바닥에 적당한 힘을 가하면서 씻어내면 된다. ‘뽀드득하는 소리가 난다. 그릇과 손바닥의 마찰을 통한 소리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지루한 줄 모른다.

 

소리는 지구에서만 나타나는 물리현상이다. 달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우주 공간에도 소리는 없다. 공기가 있어야 소리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소리가 공기를 타고 와서 고막을 진동시키면 뇌가 그걸 감지한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완전히 듣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청각 능력이 점점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게 두렵지는 않으나, 아직 들을 수 있다는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존재한다.'

List of Articles
No. Subject Date Views
3606 원당일기(58)- 이장님 [4] Feb 11, 2015 1548
3605 원당일기(57)- 말라버린 배추 Feb 10, 2015 1147
3604 원당일기(56)- 새끼 고양이 [2] Feb 09, 2015 1504
3603 원당일기(55)- 토지읽기(10) [5] Feb 07, 2015 1829
3602 원당일기(54)- 토지읽기(9) Feb 06, 2015 1597
3601 원당일기(53)- 토지읽기(8) Feb 05, 2015 1176
3600 원당일기(52)- 토지읽기(7) [6] Feb 04, 2015 1596
3599 원당일기(51)- 토지읽기(6) Feb 03, 2015 1285
3598 원당일기(50)- 토지 읽기(5) [2] Feb 02, 2015 1728
3597 원당일기(49)- 나는 말한다. Jan 31, 2015 1414
3596 원당일기(48)- 나는 마신다. [3] Jan 30, 2015 1463
3595 원당일기(47)- 나는 읽는다. [6] Jan 30, 2015 1506
3594 원당일기(46)- 나는 숨을 쉰다. Jan 28, 2015 1359
3593 원당일기(45)- 나는 본다. [2] Jan 27, 2015 1500
» 원당일기(44)- 나는 듣는다. Jan 26, 2015 1447
3591 원당일기(43)- 나는 만진다. Jan 24, 2015 1557
3590 원당일기(42)- 나는 똥을 눈다. Jan 23, 2015 1735
3589 원당일기(41)- 나는 걷는다. Jan 22, 2015 1552
3588 원당일기(40)- 빵 [6] Jan 21, 2015 1575
3587 원당일기(39)- 커피 [6] Jan 20, 2015 1761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