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Y84cfIOf_e4
가톨릭 교회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것은 신앙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지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믿음을 지적, 도덕적 행위로서 이해했으며,
사람은 인의의 은총을 잃지 않아도 신앙을 잃을수 있는것으로 말했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신앙을 인의를 받아 들이는 행위로서 이해했군요.
은총의 행위에서 오로지 신만이 주는분이고 인간은 다만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말한 종교와,
은총을 위해 협력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가르치고
신앙을 있을수도 있고 있지 않을수도 있는
어떤 지적승인으로 이해하고 있는 종교 사이에
화해란 있을수 없는것이 되었네요.
트리엔트회의에서 성례전은 그 자체의 고유한 힘으로 부터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에게 효력을 미치게 한다고 하며
주관적 상태에는 관계하지 않는것으로 주장했군요.
이점에 관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신과의 관계는
인격대 인격이라는 형태로 신과의 현실적인 만남으로만이 존재하며
믿음의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네요.
이것은 행동으로 신을 지향하는 태도며 이것이 결여 되었을적에
성례전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에게는 효력이 없게 된다고 하는군요.
루터나 칼빈은 두가지로 한정 시켰지만
트리엔트회의는 일곱가지 성례전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할 것 de fide 로 보았네요.
de fide 는 어떤것이 교회의 교의로서 선언된 이상
파문될 위험에 모험을 걸지 않는한
의심하거나 부인하거나 하는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군요.
성례전 없이는 구원이란 없으며 프로테스탄트의 경우처럼
단순히 믿음을 돋구는 힘만 가지는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화체설과 성체숭배를 보전했고
미사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나 죽어서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보전된다고 하는군요.
회개의 성례전은 공포심으로 하여 불러일으켜진 회개라 하여
불완전한 회개의 교설이지만 존속했고
로마교회는 트리엔트회의 이후 그 생동감과 창조적인 힘을 잃게 되었네요.
지금 공부 할수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이 어두워진다는데 아직은 불편이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직면하는 모든일들은
시원적 깊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된것일겁니다.
사물이 하늘과 땅과 신성과 사멸할자의 사중자가 회집하는 장소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소유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삶이 의미충만해 질것 같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것은 신앙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지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믿음을 지적, 도덕적 행위로서 이해했으며,
사람은 인의의 은총을 잃지 않아도 신앙을 잃을수 있는것으로 말했지만
종교 개혁자들은 신앙을 인의를 받아 들이는 행위로서 이해했군요.
은총의 행위에서 오로지 신만이 주는분이고 인간은 다만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말한 종교와,
은총을 위해 협력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가르치고
신앙을 있을수도 있고 있지 않을수도 있는
어떤 지적승인으로 이해하고 있는 종교 사이에
화해란 있을수 없는것이 되었네요.
트리엔트회의에서 성례전은 그 자체의 고유한 힘으로 부터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에게 효력을 미치게 한다고 하며
주관적 상태에는 관계하지 않는것으로 주장했군요.
이점에 관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신과의 관계는
인격대 인격이라는 형태로 신과의 현실적인 만남으로만이 존재하며
믿음의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네요.
이것은 행동으로 신을 지향하는 태도며 이것이 결여 되었을적에
성례전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에게는 효력이 없게 된다고 하는군요.
루터나 칼빈은 두가지로 한정 시켰지만
트리엔트회의는 일곱가지 성례전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할 것 de fide 로 보았네요.
de fide 는 어떤것이 교회의 교의로서 선언된 이상
파문될 위험에 모험을 걸지 않는한
의심하거나 부인하거나 하는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군요.
성례전 없이는 구원이란 없으며 프로테스탄트의 경우처럼
단순히 믿음을 돋구는 힘만 가지는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화체설과 성체숭배를 보전했고
미사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나 죽어서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보전된다고 하는군요.
회개의 성례전은 공포심으로 하여 불러일으켜진 회개라 하여
불완전한 회개의 교설이지만 존속했고
로마교회는 트리엔트회의 이후 그 생동감과 창조적인 힘을 잃게 되었네요.
지금 공부 할수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이 어두워진다는데 아직은 불편이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직면하는 모든일들은
시원적 깊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된것일겁니다.
사물이 하늘과 땅과 신성과 사멸할자의 사중자가 회집하는 장소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소유로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삶이 의미충만해 질것 같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