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기다리면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 연재 글에 그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계 20장이 바로 그 '천년왕국'을 언급하거든요.
저는 천년왕국을 일종의 메타포로 읽기에 전, 후, 무 등등에 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후천년설을 택하겠습니다.
세상이 진보해서 어느 단계까지 올라갔을 때 예수 재림이 일어난다고 보아야만
우리가 여기 역사 안에서 투쟁하면서 살아갈 동기가 생길 테니까요.
어쨌든 천년왕국설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역사를 어떻게 그리스도교적 종말론 안에서 해석하고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말하다보니 무천년설이 더 나아보이네요.
와우, 저는 목사님이 무천년설 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답을 보니 목사님의 답이 저보다 한 수 위이십니다.
저는 전천년설에서 무천년설로 갔다가....
답은 전, 후, 무 등이 아니라는 것에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간적으로 본다면 글쎄요.
아직도 전과 무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후천년설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다리면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 연재 글에 그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계 20장이 바로 그 '천년왕국'을 언급하거든요.
저는 천년왕국을 일종의 메타포로 읽기에 전, 후, 무 등등에 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후천년설을 택하겠습니다.
세상이 진보해서 어느 단계까지 올라갔을 때 예수 재림이 일어난다고 보아야만
우리가 여기 역사 안에서 투쟁하면서 살아갈 동기가 생길 테니까요.
어쨌든 천년왕국설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역사를 어떻게 그리스도교적 종말론 안에서 해석하고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말하다보니 무천년설이 더 나아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