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31)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독일에서 오랜 살고 있던 후배의 조언에 따라서 한 여름을 피해서 9월29일(금)출발해서 10월8일(주일)에 돌아오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다. 한 여름의 이탈리아는 여행의 피크를 이루는 시즌이래서 여행객들이 많이 몰릴 뿐만 아니라 더위 때문에 고생만 한다는 조언이었다. 비행기로 가는가, 아니면 기차로 가는가, 아니면 늘 그랬던 것처럼 승용차로 가는가에 대해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각각의 방식에 장단점이 있었다. 비행기는 시간과 체력을 많이 비축할 수 있긴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고, 목적지까지에 이르는 그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을 모두 놓친다는 단점이 있다. 기차 여행의 낭만과 운치야 내가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지만 딸 둘과 짐을 갖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12년이 넘은, 이미 그때 18만 km를 더 달렸던 중고 벤츠를 끌고 가기로 했다. 집사람도 국제 면허를 갖고 갔지만 별로 운전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열흘 동안의 운전도 완전히 내가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집사람에 대한 불평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초행길을 여행할 때 운전자는 운전에 집중하고, 대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를 읽고 미리 안내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집사람은 시력이 나쁜 탓인지, 아니면 지도 보는 걸 숙제로 생각하는지 일년 내도록 조수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든지 아니면 졸고 있었다. 그러니 나 혼자 지도 보랴, 운전하랴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이런 상황을 집사람에게 물어보면 아마 전혀 다르게 대답할지 모르겠다. 그게 나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었다든지, 자신은 원래 피아노만 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오죽 했으면 그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아내를 원망하고 있겠는가. 어쨌든지 나도 딱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단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들려야 할 곳을 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이렇게 네 군데로 잡았다. 사실 여행이라는 게 이렇게 유명한 도시를 돌아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가족끼리 처음 나간 유럽 여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계획을 짰다. 이 네 도시 중에서 나폴리가 가장 남쪽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부터 한 칸씩 위로 올라오는 루트를 선택했다. 베를린에서 이탈리아 나폴리까지 이르는 길목에 우리가 거쳐야 할 중요한 도시는 뮌헨, 밀라노, 로마인데, 이 길은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580km, 뮌헨에서 밀라노까지 500km,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590km,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210km으로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서는 이런 방식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번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카 레이스가 될는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뮌스터에 있는 조카에게 말했더니 삼춘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일단 우리는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휘파람을 불려 내달렸다. 과거의 동독 지역이라 고속도로 노면 상태가 별로였지만 오직 고속도로 번호를 가리키는 <A 9> 표지만 확인하면 되니까 간단했다. 패티 김과 조영남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간혹 휴게소에 들려 볼 일을 보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사뿐히 590km를 달려 뮌헨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최소한 로마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그 시각에 두 시간이나 더 달려 국경을 넘은 다음, 아마 쿠프스타인이라고 기억되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일박을 했다.
다음날 아침 최대한 일찍 출발했다. 이날 우리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최소한 1천km는 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오래된 중고차를 끌고 가족과 함께 알프스를 다시 넘어서 여행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못할 것 같다. 멋도 모르고 대충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알프스 산맥을 횡단하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시도 때로 없는 소나기, 자욱한 산안개를 뚫고 전진해야만 했다. 라이트를 밝히고 윈도우 브러시를 바쁘게 움직이면서 뒤차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운전하면서 겨우 산맥을 넘을 수 있었다. 그 산 꼭대기에서 차가 고장이라도 났다면 말로 별로 잘 통하지 않은 상황에서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산맥을 넘느라고 예상외의 시간을 보낸 우리가 로마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저녁 먹을 때를 넘겼다. 여행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잠자리를 잡는데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평소처럼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 로마에 도착한 게 큰 불찰이었다.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열서너 군데의 호텔, 모텔, 여관 등에 들어가서 방을 알아보았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그때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지금도 기억한다. “두 유 해브 어 페밀리 룸?” 모두 퇴자를 맞고 지친 몸으로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워진 모텔로 차를 몰았다. 목사 가족이 토요일 밤에 이렇게 싸돌아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든지 하나님은 그곳의 잠자리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 안에서 쪼그리고 자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날따라 한국의 장마철 같은 굵은 비가 밤새도록 쏟아졌다. 번개, 천둥, 빗소리를 자장가삼아 로마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A 1>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잔 그 날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후기>: 로마에서 방을 잡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가 도착한 날이 공교롭게 토요일이었다는 것이다. 토요일은 어느 도시나 뜨거운 법이다. 다른 하나는 방을 잡으러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틀 동안 운전에 시달렸지, 입은 옷은 시원치 않지, 영어 발음은 촌스럽지, 아마 지배인이 나를 동양에서 온 마약사범 쯤으로 보지 않았을까? 다음날은 내 대신 집사람이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 한번에 방을 얻었다는 거 아닌가!

사진 설명
위: 나폴리의 소렌토로 항
아래: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길의 중간 경유지인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호텔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면. 이탈리아를 가는 길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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