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관련링크 : |
---|
진정한 복종에 관한 조언
진정한, 그리고 완전한 복종은 모든 미덕중의 미덕입니다. 그리고 복종이라는 미덕 없이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성취될 수 있다 해도 그 일은 그렇게 훌륭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일이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일지라도 - 미사든, 말씀을 듣는 것이든, 기도하는 것이든, 명상하는 것이든, 당신이 생각하는 다른 그 무엇이든 간에 - 진정한 복종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큰 유익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 간에, 당신이 하고 싶은 만큼의 보잘 것 없는 일을 하십시오. 진정한 복종은 당신에게 더 이롭게, 훌륭하게 작용합니다. 복종은 항상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인 가장 좋은 것을 생산해냅니다. 진실로 복종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진정한 복종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일을 하는데 실패하거나 방해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종은 선한 것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종은 곤란을 겪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것 속에는 어떤 선한 것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종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가 소유한 것을 버릴 때,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그 자리로 들어오시면서 반응하십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그 것을 원하시는 양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그 것을 나보다 위대한 분의 손에 넘기면,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을 때, 그 때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위해서 그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저버리게 되면, 그 분은 자신 스스로를 저버리는 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어떤 것을 원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그 것을 원하십니다.
자, 한 가지 명심합시다: 그러면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원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그 것을 원하신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내가 나 자신에게서 “자아”를 비우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더도 덜도 아닌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원하실 것이고, 또한 꼭 그 자신이 그 것을 원하는 것처럼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없다면, 하나님 되심이라는 진리적 측면에서, 그는 정확하지도 않고, 또한 마땅히 그 본성을 지니셔야 할 하나님 되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복종은 “나는 그 것이 그렇게 혹은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라든가 “나는 이것을 또는 저것을 원해” 라면서 쫓아가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당신 자신의 것으로부터 단지 빠져 나오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기도 중 가장 좋은 기도는 “이런 미덕을 주시고, 저런 삶을 주십시오” 라거나 “ 예, 주님, 저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거나 영생을 주십시오” 라는 기도일 수가 없고, “주님, 나에게 다른 것 말고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것만을 주십시오, 모든 면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그 무엇이라도” 라는 기도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기도는 어떤 초보적인 기도보다도 우월한데, 이 것은 마치 하늘이 땅 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마쳤을 때, 그 것은 기도를 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야 사람은 진정한 복종 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 속으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복종은 “나는 그 것이 그렇게 되길 원해” 라고 할 수 없듯이, 또한 진정한 복종으로부터는 “나는 원하지 않아” 라는 것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원하지 않아” 라는 말은 모든 복종에 있어서 분명한 독이기 때문입니다. 그 것은 성 어거스틴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실한 종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듣거나 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종" 이란 것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는 아주 자발적인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자발적이라는 "의도" 까지도 배제된 느낌입니다. 그가 말하는 복종은 무슨 대상에 대한 복종이라는 의미도 아닌 듯 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어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가 말하는 "복종" 은 "자기 버림" 인 것 같습니다... 자기 버림은 오롯이 자기 속에서의 하나님의 탄생과 통하구요...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좋은 글을 번역하셨군요.
영어에서 번역한 거라구요.
아마 독일어에서 번역한 한글 책도 있을 텐데요.
기독교서회에서 몇 년 전에 나온 것으로 전해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첫날처럼 님의 번역이 훨 나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에크하르트의 글은 읽을수록 감칠 맛이 나네요.
복종의 의미를 저렇게 순전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요.
복종은 근본적으로 자아를 땅바닥에 내려놓는 거네요.
때로 악에게도 복종할 수 있을 때만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복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군요.
하나님이 왜 악을 내버려두는지 알겠네요.
악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 방식이
바로 복종이라는 거지요.
그런 방식으로 악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게 아닐까요?
시간이 되는 대로 본인이 이해한 에크하르트의 글을 번역해서 올려주세요.
이런 글들은 우리의 영혼을 안식으로 인도한답니다.
참고로 펭귄 클래식스에서 영역한 글을 올려드립니다.
말씀드린대로 보다 쉽게 의역이 된 것 같습니다.
두 개의 번역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깊은 (또는 숨겨진) 원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봅니다.
참된 복종(obedience)에 대해
참되고 완전한 복종은 모든 미덕 위에 있는 미덕입니다. 어떤 일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이 미덕없이 발생하거나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작은 일, 즉, 미사에서 말하거나 듣는 것, 기도하는 것, 묵상하는 것, 또는 무엇을 떠올리든지 간에, 참된 복종 가운데 이루어진 다면, 그 일들은 더욱 유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원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무엇이든지 택하십시오. 참된 복종은 그 일이 당신에게 더 고상하고 좋게 만들 것입니다. 복종은 항상 모든 것 안에 있는 가장 좋은 바로 그것을 이끌어냅니다. 진실로 복종은, 우리가 참된 복종을 통해 하는 것들을 결코 훼손하거나 망각하지 않는데, 그것은 복종이 선한 것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종은 결코 갈망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종이 자신 안에 가지지 못한 선(善)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종을 통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우리의 소유물로부터 벗어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마치 자신을 위해 행하시는 것처럼, 그를 위해 바라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자신의 의지를 버려, 그것을 나보다 높으신 분의 손에 놓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위해 원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그 분이 만약 나를 소홀히 하신다면, 그분 자신을 소홀히 하시는 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원하십니다. 이제 기억하십시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그 분은 나를 위해 무엇을 원하실까요? 내가 내 자아를 벗어 버릴 때, 그 분은 반드시 나를 위해서, 그 분이 자신을 위해 원하는 모든 것들을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리고 그 분이 자신을 위해서 원하는 바로 그대로 - 원하실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지 않으셨다면, 진리이신 하나님의 그 진리에 의해 그 분은 의롭지 않으셨을 것이고, 마땅히 그 분의 본성이신 하나님이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참된 복종 안에서는 ‘나는 이것 혹은 저것이 일어나길 원한다’ 라거나 ‘나는 이것 혹은 저것을 원한다’ 라는 말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우리 자신의 것으로부터 순전히 떠나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 가운데서는 ‘나에게 이런 특별한 미덕이나 헌신의 길을 주십시오’ 라거나 ‘예, 주님, 나에게 하나님을 혹은 영생을 주십시오’ 라는 말이 있을 수 없고, 도리어 ‘주님, 주께서 원하시고 행하시는 것만을 내게 주십시오, 주님, 오직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말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늘이 땅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앞서 나온 기도 보다 훨씬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법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올바로 기도를 드린 것이고, 참된 복종 안에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복종 안에서 ‘나는 이것을 원해’ 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아’ 라는 말도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아’ 라는 것은 모든 참된 복종에 온전히 해(害)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참된 종은 그가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듣거나 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장 크고 높은 소원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제가 번역한 거 중에 약간 오역이 있었다면, "초보적인 기도" 라고 한 부분이 의미 상으로는 맞아도, 영어 원문에는 " the first prayer" 라고 해서 "앞의 기도" 즉 " 나는 이것 혹은 저것이 일어나길 원한다" 등등의 앞에서 열거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정확하지도 않고" 도 "just" 라고 해서 "의롭지 않은 것" 이라는 의미가 더 적합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