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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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205일째 만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래도 이나마 다행이다.
온 국민이 무시무시한 폭력에 노출되어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참사.
미국의 9.11 테러와 비교되는 참사.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정신적 불안과 심적 동요를 일어켜 트라우마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 트라우마는 "나도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특징이 있다.
폭력의 무감각성은 반드시 구경꾼들을 대거 양산한다. 심지어 어떤 구경꾼은 폭력의 피해에 은근한 쾌감과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대중적인 언론은 철저히 개인적인 원인을 선호한다.
사라케인의 '폭파'라는 작품에 나오는 이안은 강간당하고 사지가 절단된 군인의 연인인 콜(Col)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 “그들에게 네가 내게서 본 것을 말해줘.”라고 군인이 부탁하지만, “그건 내 일이 아냐.”라는 차가운 답변으로 거절한다.
이안은 군인이 겪는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한 폭력을 보도해야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거부한다.
군인은 자신이 겪은 전쟁의 야만성이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한 것인지,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폭력에 고통 받고 상처 입었는지 말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거부하고 방관자로 남기를 원한다.
이안은 유병언의 아들이 방에 숨어있었던 것처럼 방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곳만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생각하지만 끝내 자살한다. 이처럼 폭력앞에서는 누구나 가해자나 희생자가 될 수 있고, 방관자로 남을 수 있다.
이번 참사를 일으킨 폭력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희생자들이나 온국민의 바람이다. 문제는 그들의 고통과 목소리를 외면하는 우리안의 구경꾼들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우리사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 보다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냉소주의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더 똑바로 차려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