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19일
자색 옷(4)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15:19)
군인들의 조롱이 계속됩니다.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이 갈대는 군인들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준 것이었습니다.(마 27:29) 그것은 왕을 상징하는 지팡이였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가한 조롱은 아주 극적입니다.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누가 감히 왕의 머리를 왕의 지팡이로 칠 수 있습니까? 보통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침을 뱉는다는 건 상대방을 인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왕 앞에서 누가 침을 뱉을 수 있습니까? 군인들은 다시 꿇어 절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갖고 노는 중입니다. 더 이상의 모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군인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이미 주어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기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관료주의에 들어 있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조직에 충실하면서 진리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멀어지는 겁니다. 더 근본적으로 그들의 행위는 그 당시의 보편적인 규범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자유를 높은 가치로 여기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지난 세월 많은 양심수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재판에서 무기징역이나 심지어 사형을 선고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폭력입니다. 모욕입니다. 이런 일에 가담한 검찰이나 판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양심수들의 머리를 갈대로 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겠지요. 개인적인 차이가 있긴 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그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자신이 가담한 일을 당시에는 판단하지 못합니다. 세월이 흘러가야 무엇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으로 예민한 눈을 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한 군인들중에 한명이라도 양심적 고백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2천년 역사에서 그 용기에 칭송을 받았을텐데.
시대를 제대로 통찰할 수있는 영적의 눈이 있어야 양심의 고백이 있다고 봅니다.
촛불시위의 재판에 간섭한 신영철 대법관이 있다면,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님, 군대의 이적 책목록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님들 등등.
시대을 제대로 통찰하며 아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조직에서의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혀가며 그동안의 쌓아올린 공과를 하루아침에 부서짐을 각오하며,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동참하며 고백하는 분들의 용기가 부럽습니다.
교회나 사회에 대해 제대로 볼 수있는 영적인 눈이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기도하며,
지금도 많은 고초를 겪으며 시대의 불의에 대한 양심을 고백하시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