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27일
십자가 아래서(1)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15:23)(15:24)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기 전에 몰약이 든 포도주를 받았지만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몰약은 감람과(橄欖科) 나무에서 얻어지는 식물기름입니다. 예수의 탄생 전승에 따르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가져온 선물 목록에 이 몰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몰약은 다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통증 완화제입니다. 몰약을 포도주에 탔으니 이런 효능이 배가되었겠지요.
유대의 귀부인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사형수들에게 이것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잠언 31장6절이 그런 전통에 대한 흔적입니다.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이게 줄지어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말씀입니다만, 이 세상에는 독주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에 처해진 사람들입니다. 실연을 당하거나 사업에 부도가 난 사람들입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견디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독주는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구원 경험으로 다가오겠지요.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위험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듯이 십자가의 고통마저 자발적으로 감수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인용한 잠언에 빗대어 볼 때 예수님은 이렇게 죽을 자가 아니라는 사실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장면에서도 예수님은 침묵을 지킵니다. 매 순간이 극단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한대도 말입니다. 여기서 무슨 말이 필요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실 뿐입니다. 겟세마네에서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지만, 이제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기도도 필요 없이 오직 거기에만 영혼을 집중하면 되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