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9일 십자가에 달린 자(8)

조회 수 2046 추천 수 0 2009.11.09 00:11:45
 

2009년 11월9일

십자가에 달린 자(8)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15:3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또 조롱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이미 산헤드린 재판이 열릴 때 예수님을 실컷 조롱한 적이 있습니다.(막 14:65) 이들은 지금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운명을 조롱하는 중입니다. 그들의 전통에서 볼 때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입니다. 그런 죽음에 처해질 자가 마지막 때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게 될 ‘인자’라고 했으니, 기가 막힌다는 뜻이겠지요.

이들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를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생각보다 그들의 생각이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방식의 죽음을 구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원은 생명을 얻는 것인데,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구원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냈으면서 자기는 결국 십자가에 죽는 예수님의 운명을 대제사장들을 비롯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것의 실질적 의미를 놓치고 나이브하게 대하거나 또는 주술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자가 모형을 옷에 달거나 방에 걸어두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죽음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들림을 받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그가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십자가의 죽음은 그야말로 한 인간의 파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체이면서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하는 조롱을 받으셨지만, 놀랍게도 그런 조롱을 넘어서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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