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10일

십자가에 달린 자(9)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15:32)


위 구절에서 대제사장들은 신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진술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모욕을 가합니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나 그리스도나 모두 구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왕과 그리스도는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십자가에서 무능력하게 죽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거기서 죽어가면서는 왕이나 그리스도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바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보고 믿을 수’ 있겠지요. 

초기 기독교가 처한 상황이 이런 진술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들이 주변으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보고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는 요구입니다. 그게 터무니없는 요구는 아닙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기독교는 세상과는 단절된 밀교 집단이 되고 맙니다.

초기 기독교는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는지를 구약성서에 근거해서 변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십자가 사건이 왜 구원의 유일한 길이었는지에 대한 해명이었습니다. 그 대답은 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불화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전통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야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요구에 대해서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선 신약성서가 제시하는 대답을 정확하게 배워야하겠지요. 그리고 오늘 경험하는 새로운 삶의 지평에서 그 대답을 다시 해석해내야 합니다. 이런 대답과 해석의 역사는 종말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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