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8일(금)
루터는 별로 잘 생기지 못한 것 같다.
크라나흐라는 화가가 루터와 그의 가족을 그리곤 했다.
루터가 대학교를 다니거나 수도원 시절에는 마른 편이었는데,
수도승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살이 오른 것 같다.
루터는 젊었을 때는 건강했으나
종교개혁의 중심에 발을 디디고 나서는
별로 건강하게 산 거 같지는 않다.
정신적으로도 예민한 편이어서
헛것(마귀)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1520년에는 사고로(?) 동맥이 끊기기도 했고,
종교재판을 받으러 보름스로 가는 길에는 심한 열병에 걸렸다.
바르트부르크에 피신해 있을 때는 변비로 고생했다.
자기 친구인 슈팔라틴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했다.
“나는 거의 그 귀신에게 항복할 뻔했다.
지금은 피로 목욕하며 평안을 얻을 수가 없다.
나흘 동안 치료했으나 갑자기 또 찢어졌다.”
변비만이 아니라 이명, 두통, 협심증, 담석, 통풍 등이 있었다.
1537년 54세의 루터는 만투아 공의회에 참석하면서 다시 병이 걸렸는데,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은 루터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일 년후에 루터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만일 내가 슈말칼덴에서 담석 때문에 죽었다면
나는 이미 모든 병에서 해방되어 천국에 있은지 일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의사들에게 아주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내가 거대한 황소라도 되는 것이
마실 것을 많이 주었으며 내 음부를 빨아대기까지 했다.”
루터는 평생 투쟁하면서 살았다.
크게는 교황과 싸웠고,
작게는 병과 싸웠다.
이걸 크고 작다고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대상 모두 루터에게는 마귀였다.
그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런 전투에서
그는 끝까지 갔고, 승리했다.
그런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63세까지 살았다는 건 승리다.
오버만은 <루터>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정리한다.
중세기적 죽음의 상징(memento mori)에 의하면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루터는 그의 믿음으로 이것을 단호히 뒤집어 말할 수 있었다.
“죽음 한가운데서 우리는 생명에 둘러싸여 있다.”
그림은 시즈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마르틴 루터에 비유한 만평이라고 합니다.
20대의 루터는 죄책감 때문에 6시간동안 죄를 고백하거나,
안티기독교에서 인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육체적으로도 강건하지 못했던 루터가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고전 1:27]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약한자가 강해진 후에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강한게 좋다는 유혹은 떨치기 힘드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