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평화

조회 수 2518 추천 수 0 2013.11.19 23:11:29

 

11월19일(화)

   

지난 설교 주제는 ‘하나님의 평화’였다.

바울은 빌 4:7절에서는 ‘하나님의 평화’라고 말하고

4:9절에서는 ‘평화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소유격으로 하든지

아니면 평화를 소유격으로 하든지 똑같은 의미다.

하나님이라는 말과 평화라는 말이 병행구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곧 평화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신학의 중심에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평화를 협의로만 생각한다.

유엔에서 파송한 군인들을 평화 유지군이라고 한다.

그게 좀 웃기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군사력 자체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태를 잠시 진정시키는 역할은 가능하지만

근원적인 평화를 일구어낼 수는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이런 수준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평화를 광의 차원에서 하나님으로 본다.

평화는 하나님만 행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구원과 같은 의미다.

전쟁상태를 일시 멈추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쟁의 근원을 아예 없애는 차원을 가리킨다.

그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평화라고, 또는 평화의 하나님이라고 말했으며,

그것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고 했다.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상태가 어떤 걸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건 죽음의 상태다.

죽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그 자유는 평화를 보장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단단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듯이

예수와의 관계가 깊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하나님이 평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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