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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1일(목)
요한 14: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먼저 가서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돌아와서
제자들을 그곳으로 인도해주겠다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그러자 도마는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한다.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이 질문은 도마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초기 기독교에 속한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저 질문을 알기 쉽게 해석하면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굉장히 솔직한 말이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죽음을 암시하면서
어디론가 길을 간다고 말씀하셨다.
그 길은 물론 하나님이다.
도마에게는 그것이 별로 명확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거지
또 어디로 가긴 간단 말인가.
사실 하나님을 믿기는 어렵다.
보이지도 않는 분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고대시대부터 사람들은 형상을 만들었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형상을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또는 어떤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확인하려고도 했다.
요즘은 기복적인 현상이나
은사 현상으로 확인하려 한다.
그건 다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는 증거다.
도대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확인할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
두 가지 극단으로 빠진다.
하나는 냉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열광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