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한 순서로 사도신경(또는 니케아 신조)을 통한 신앙고백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조라는 사실에 있다.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신조가 나왔지만 사도신경(또는 니케아 신조) 정도의 권위를 확보하고 있는 신조는 없다.
앞에서 한번 짚었듯이 어떤 이들은 신경, 또는 신조가 성경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이유로 낮춰보려고 한다. 그건 오해다. 신조와 성경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음서와 서신에는 원시적 신조들이 많이 나온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도 역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나온 신조다. 빌 2:5-11절도 초기 기독교의 신조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런 신조는 수도 없이 많다.
신조를 낮춰보는 이들은 신조가 자칫 성서의 권위를 상대화시킬지 모른다는 염려를 한다. 물론 성서보다 더 권위 있는 문서는 없다. 그러나 성서도 초기 기독교의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신조도 똑같이 초기 기독교의 산물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신약성서가 사도신경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이 신약성서 형성에 나름으로 영향을 끼쳤다. 성경과 신조 모두 초기 기독교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신약성서의 권위를 빌미로 사도신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도신경이 신약성서 형성에 나름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부분은 가끔 질문이 올라오는 내용이네요.
신약성서의 정경확정은 367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주도된 채택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는 각 지역의 초대교회 내에서 이미 지금의 정경들이 우월한 권위의 서신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이미 우월성을 획득한 서신들에 공적인 정당성을 주었을 뿐이다.
이 정경의 서신들이 우월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신조의 영향이 있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제가 이해한 정의에 대하여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이제야 질문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