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복음서 네 곳에(마 21:12-17, 막 11:15-18, 눅 19:45-48, 요 2:13-22) 다 나온다. 복음서 기자들이 그 사건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당시 제사장들은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성전 마당에서 운용하고 있었다. 합법적인 일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걸 문제로 여기 않았을 것이며, 비판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관행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거기에 극렬 저항하셨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환전상과 비둘기 장사꾼들의 시설물을 뒤엎었다. 노점상들의 가판대를 가차 없이 철거하는 구청 용역 직원들의 행태와 비슷해 보인다. 예수님이 그렇게 분노한 이유는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신앙을 상품 거래로 전락시켰다는 데에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복음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온갖 방식으로 고객의 구미에 닿도록 상품을 선전하는 일에 교회가 매진한다. 신자들은 대형 매장을 찾아 원하는 물건을 카트에 담듯이 종교 상품이 골고루 구비된 교회를 찾는다.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볼 눈이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정체성과 관계된 문제만 한 마디 하자.
복음을 상품으로 여기는 교회에서 목사의 역할은 판매고를 올리는 것이다. 목사 자격으로는 영적인 마인드가 아니라 CEO 마인드만 갖추면 된다. 교회가 그것을 원하고 목사 스스로 그런 길을 가고 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큰 차이가 없다. 다행히 이런 역할이 큰 효과를 내면 목회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별 효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건 목사에게 불행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목사가 영적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영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신자들도 역시 영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오타를 잡아봅니다.
두번째 문단입니다
선전하는 이에 > 일에 / 물건을 가트에 > 카트에~
맛점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