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영성화
성찬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성찬이 물질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는 철학적 해석이다. 이런 해석에 대한 공부를 통해서 성찬을 집행하는 목사는 자신의 행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좀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성찬식의 질료인 빵을 보자. 우리의 경우로 바꾸면 밥이 될 것이다. 빵은 단순한 사물에 불과하지만 그 속사정은 엄청나다. 우주의 무게와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 너머 어느 공간으로 여행하다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도착해서 빵을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곧 거기에 지구와 비슷한 생명 현상이 있다는 증거다. 빵은 지구라는 생태적 조건 아래서만 가능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포도주도 마찬가지다. 우주에서 포도주 한 잔을 발견한다는 것은 지구와 비슷한 생태 조건의 한 행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빵과 포도주에는 우주론적 깊이가 놓여 있다.
또한 성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 사람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다른 때는 경험하지 못하다가 성찬에서 빵을 받아드는 순간에 빵이 인간을 살리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크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이 더 성숙하면서 그는 나중에 그 경험에 근거해서 삶의 분명한 방향을 잡을지도 모른다. 화가, 작곡가, 시인, 예술가가 될 수도 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런 경험에 근거해서 신학자의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성찬은 기독교인들의 2천년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역사에 연루되어 있다.
성찬식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라. 거기에 빵과 포도주가 있다. 빵이 나뉘고, 포도주가 나뉜다. 사람들은 그것을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인식하고 먹는다. 함께 나눠 먹고 마시는 행위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한다. 빵과 포도주는 사물에 불과하지만 성찬의식을 통해서 거룩한 것으로 승화된다. 사물의 영성화(spiritualization)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