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빈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오해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영혼의 풍요로움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근거가 있을까? 풍요롭다는 것은 실제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더 이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유가 차고 넘친다하더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더 채우려고 한다면 그는 풍요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최소한 먹고 살 정도의 물질을 실제로 주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잘못은 아니지만, 이 말씀은 훨씬 근원적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은 다른 것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거꾸로 하나님 나라 밖에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어디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했다는 어거스틴의 고백도 이런 차원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공고화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영혼의 풍요와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 재물이 신이 되었다. 이런 데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여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런 구조와 함께 그냥 굴러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 교회도 세상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사업을 확장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골몰하는 기업처럼 교회도 외형 성장에 매진한다. 영혼의 안식과 영혼의 풍요와 자유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이런 데에 문제의식이 있는 목사도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다른 이들도 동의하겠지만 한국교회는 영혼의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교회생활을 하는 많은 신자들이 영혼의 만족을 모른다. 영혼이 빈곤하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태인지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세월호 사태 당시, 이미 우리 아이들은 입시제도로 인해 죽음에 내몰려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이 글을 통해 이해가됩니다.
헛된 것만을 쫓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교회마저 세상에 휩쓸려 나가고 있는
심각한 사태에 어린 자식들이 영혼의 만족을 경험하고 살 수 있을지...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