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고독한 영혼
목사는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고독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목사만이 아니라 기독교인 모두가 그렇다. 죽음을 혼자 맞이해야 하듯이 하나님도 혼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공동체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경험은 개별적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한다고 해서 옆 사람도 저절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독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목사들을 보기 힘들다. 늘 신자들과 몰려다니고, 동료 목사들과 몰려다닌다. 혼자서는 삶을 버텨내지 못한다. 특히 한국교회 목사들은 교회정치에 민감하다. 노회장, 총회장이 되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돈을 쓰고, 모의한다.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예배와 기도회와 각종 회의도 역시 정치적인 성격이 아주 강하다. 경우에 따라서 모임이 필요하지만 고독한 영혼의 차원이 점점 더 실종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혼자서 하나님을 직면할 능력이 없으니 몰려다니면서 그런 약점을 위장해보려고 한다. 이건 영적인 장애다.
목사는 교회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고독한 영혼으로 살아가기 힘든 자리다. 각종 모임과 심방이 주를 이루는 한국교회 목회 특성이 이를 부채질한다. 목사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실제로 그렇다. 교회 일에 쫓기는 목회 현장에서 살다보니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도 희미해질 때가 있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면 목사 정체성의 위기라고 여겨야 한다.
고독한 영혼이라는 말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야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데 한눈을 팔지 못한다. 어머니가 남겨주신 노자만큼의 삶을 산다는 사실을 뚫어보는 시인의 혼이 고독하듯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의 엄중함을 아는 목사의 영혼도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런 목사라고 한다면 공연한 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시간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 고독한 영혼은 키에르케골이 말한 '신 앞에서의 단독자' 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