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냐, 도냐
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해야 할 목사의 공부는 총체적이다. 목사 공부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공부는 총체적이다. 여기 벽돌 쌓는 훈련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걸 기술적으로만 생각하면 간단하다. 수직과 수평을 맞출 줄 알고, 벽돌과 벽돌 사이를 시멘트로 연결하는 기술을 익히면 된다. 기껏해야 한두 달이나 반년이며 충분히 배울 것이다. 그러나 그걸 단지 기술로만 다루지 않고 예술의 차원으로 여기는 사람은 생각할 게 많아서 그 일을 손에 놓을 때까지 계속 배우려고 한다. 수직과 수평을 더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벽돌로 된 벽이 기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모든 벽돌이 똑같아 보이겠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걸 간파해서 벽돌을 적재적소에 올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똑바로 쌓는 게 아니라 어떤 느낌이 왔을 때 한두 개를 약간 튀어나오게 쌓을 수도 있다. 시멘트가 굳는 시간을 좀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벽돌쌓기도 도다.
장자에는 이런 기술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소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거기에 등장하는 기술자들은 기술을 뛰어넘어 도에 들어갔다. 포정이라는 백정은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평생 갈지 않고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문혜군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포정의 대답이 이렇다. 보통 백정들은 칼을 한 달에 한번은 갈아야 한다. 뼈를 자르기 때문이다. 훌륭한 백정은 일 년에 한 번씩 갈아야 한다. 힘줄과 살을 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에 이른 백정은 평생 칼을 갈지 않아도 된다. 세월이 갈수록 칼날이 더 선다. 뼈와 힘줄과 살 사이의 틈으로 칼을 집어넣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인간 행위에 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의 메타포다. 기술도 이럴진대 궁극적 진리이자 생명이며 길이신 하나님 경험이야 더 말해 무엇 하